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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수업

정답 없는 수업을 입시 안에 넣을 수 있는가: 강원으로 간 그레이트북스

세인트존스대식 그레이트북스 교육이 강원도 초·중·고교로 확산한다. 정답 없는 토론 수업이 한국 입시 구조와 만날 때 생기는 긴장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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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 없는 수업을 입시 안에 넣을 수 있는가: 강원으로 간 그레이트북스

EBS 뉴스 보도에 따르면, 인천의 한 대학에서 한국과 미국의 학생과 교수 10여 명이 나다니엘 호손의 1800년대 소설 웨이크필드를 읽고 토의를 벌였다. 핵심 질문은 "사회적 관계가 사라진다면 인간의 존재는 어떻게 달라지는가"였고, 교수는 정답을 가르치지 않았다. 보도가 소개한 이 수업은 미국 세인트존스대식 그레이트북스(GB) 교육으로, 2019년 인천대학교에서 시작돼 최근 강원도 초·중·고교까지 확산하고 있다고 한다.

이 칼럼이 이 보도에 주목하는 이유는 고전 읽기의 미덕 때문이 아니다. 강원도교육청이 대학 간 협약에 참여해 교사와 초·중·고 학생까지 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대목, 그리고 한국GB교육협회장이 목적으로 "새로운 방식의 입시 제도 제안"을 언급했다는 대목 때문이다. 구조적으로 보면 이것은 교양 프로그램의 확산이 아니라, 정답이 없는 수업을 정답으로 줄 세우는 입시 안에 어떻게 넣을 것인가라는 훨씬 어려운 질문의 시작이다.

정답을 가르치지 않는 수업이 팔리기 시작한 이유

보도에 따르면 세인트존스대의 교육 과정은 별도의 전공 없이 인문·자연과학 고전 200여 권을 읽고 토론하며, 그 핵심은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질문하는 힘과 사고력을 기르는 것이다. 기자가 인용한 월터 스털링 세인트존스대 총장은 AI가 던지는 질문을 이렇게 요약했다. AI가 할 수 없는 인간만의 능력은 무엇이며, 우리가 충분히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AI는 인간의 어떤 능력을 위협하게 되는가.

이 칼럼의 해석으로는, 고전 200여 권을 읽는 교육 과정이 2019년이 아니라 지금 확산하는 데는 시점의 논리가 있다.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의 가치가 AI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아졌다는 인식이 퍼질수록, 그 반대편에 있는 수업, 곧 정답을 주지 않고 질문을 이어가게 하는 수업의 희소성이 올라간다. 보도가 인용한 인천대 나노바이오공학과 3학년 학생의 말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지식적인 수업과 달리 자기 생각과 어떤 삶이 올바른 태도인지를 더 생각해 보게 됐다는 것이다. 이 칼럼의 해석으로는, 공학 전공 학생의 이 말은 수업의 효용이 지식 밖에 있었음을 시사한다.

보도가 전한 사실. 그레이트북스 교육은 2019년 인천대에서 시작됐다. 세인트존스대는 전공 없이 고전 200여 권을 읽고 토론한다. 보도에 따르면 강원도교육청이 대학 간 협약에 참여하면서 교사와 초·중·고 학생도 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한국GB교육협회장 이용화 인천대 교수는 목적으로 교육 문화의 변화, 새로운 방식의 입시 제도 제안, 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교육 생태계를 들었다.

대학의 세미나와 중학교 교실은 같은 수업이 아니다

여기서 이 칼럼이 먼저 구분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보도의 장면은 대학의 토의 수업이며, 기자는 세인트존스대 졸업생의 말도 함께 전했다. 기자가 인용한 졸업생 졸리 로는 "함께 이 문제를 풀어보자"라고 말할 수 있는 한 팀이라는 감각을 말했다. 보도의 대학 세미나와 초·중·고 도입은 맥락이 다르다. 이 칼럼의 해석으로는 학교로 옮겨 갈 때 검토해야 할 쟁점이 적어도 셋이다. 학생이 이 수업을 선택할 수 있는가, 교사가 이 방식을 어떻게 준비하는가, 그리고 수업의 결과를 평가에 어떻게 다룰 것인가다.

이 칼럼의 해석으로는, 그래서 강원도교육청의 참여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학생'이 아니라 '교사'다. 보도는 교사도 그레이트북스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전했다. 이 칼럼의 해석으로는 정답을 가르치지 않는 수업은 교사가 정답을 참는 연습에서 시작되며, 교사의 준비가 먼저 가고 학생 수업이 뒤따르는 순서가 지켜지느냐가 이 실험의 성격을 좌우할 수 있다.

'새로운 입시 제도 제안'이라는 말의 무게

협회장의 발언 가운데 이 칼럼이 가장 무겁게 읽는 대목은 입시다. 보도는 그 제안의 내용을 전하지 않았으므로 여기서 구체적인 형태를 짐작할 수는 없다. 다만 구조적으로 보면 질문과 토론을 기르는 교육이 입시와 만나는 방식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토론과 사유의 과정을 평가 가능한 기록으로 바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평가 바깥에 두는 것이다. 전자는 과정을 기록으로 평가하는 전형의 논리와 닿아 있고, 후자는 대입에서 가치가 인정되지 않는 활동이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느냐는 오래된 문제와 만난다.

이 칼럼의 해석으로는 평가에 연결되는 설계는 토론의 경험을 평가 문구로 환원할 위험을 안고 있으며, 토론 수업이 평가에 반영되기 시작하면 토론을 잘하는 법이 사교육 상품이 될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이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협회장이 말한 "학생에게 더 많은 기회"가 어느 쪽 학생에게 돌아가느냐는 제도 설계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AI 시대의 질문 교육이 피해야 할 함정

보도는 AI가 지식을 대신하는 시대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질문과 토론의 가치가 오히려 커지고 있다고 정리했다. 이 칼럼도 그 방향에 동의한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보면 한 가지 함정이 있다. '질문하는 힘'이 새로운 역량 항목이 되는 순간, 그것은 다시 측정되고 훈련되고 비교되는 대상이 되며, 그 순환은 지식 전달 교육이 겪은 것과 같은 경로를 밟을 수 있다.

보도가 전한 세인트존스대의 방식이 흥미로운 것은 그 반대 방향을 가리켜서다. 보도는 200여 권의 고전을 읽고 토론하며 교수가 정답을 가르치지 않는 방식을 전한다. 이 칼럼의 해석으로는 그 방식의 핵심은 무엇을 측정하느냐가 아니라 측정하지 않는 것을 견디는 데 있다. 강원도의 초·중·고교가 이 원형에서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는 아직 보도에 나오지 않았다. 이 칼럼의 해석으로는 그 선택이 프로그램의 성패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줄 것이다.

정답을 가르치지 않는 수업을 정답으로 줄 세우는 입시 안에 넣는 일은 가능한가. 강원도의 실험은 그 질문에 대한 한국 교육의 한 답안을 보여줄 수 있다.

출처: EBS 뉴스12 — AI 시대 '질문의 힘'…강원으로 확산한 GB 교육 (서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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