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수업
막을 것인가, 다시 물을 것인가: AI 시대 교양교육을 둘러싼 교수들의 대화
Chronicle 'Teaching' 뉴스레터(2026년 10월 1일)로 읽는 AI 시대 교양교육. 강의실 안 글쓰기, 종이 읽기, AI 탐지기를 둘러싼 교수들의 고민과 글쓰기의 가치와 교양교육의 목표를 신중히 탐구하자는 맥클러 교수의 제안을 분석한다.

고등교육 전문지 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의 베스 맥머트리 기자는 2026년 10월 1일자 'Teaching' 뉴스레터에서 한 학술 모임의 풍경을 전했다. 어사이너스 칼리지(Ursinus College)에서 열린 인문·사회과학 교수들의 콜로키엄이다. 맥머트리에 따르면 이 모임은 티글 재단(Teagle Foundation)의 지원을 받는 연례 행사이고, 2026년 모임의 제목은 '모든 것이 인공적인 시대의 교양교육(Liberal education in the age of artificial everything)'이었다. 그는 그 전주 며칠 동안 이 자리에 있었다고 썼다.
이 글은 연구 보고서가 아니다. 한 기자가 교수들의 대화를 듣고 정리한 관찰기다. 그래서 이 칼럼은 수치보다 그 대화에 담긴 질문에 주목하려 한다. 교수들이 붙잡고 있는 질문은 'AI 부정행위를 어떻게 막을까'보다 한 걸음 더 깊다. 교양교육이 원래 학생에게 길러 주려던 것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이다.
읽기의 문제가 '쉬워 보이는' 시점
맥머트리는 2년 전 같은 행사에 갔을 때는 관심이 주로 읽기에 있었다고 회고한다. 점점 더 많은 학생이 깊이 읽지 않거나, 어쩌면 깊이 읽지 못한다는 걱정이었다. 그에 따르면 교수들은 이번 모임에서도 그 걱정을 하고 있었다. 다만 AI가 학부 생활에 스며든 뒤로는 그 문제가 거의 단순해 보일 정도가 됐다고 그는 쓴다.
맥머트리에 따르면 그가 만난 교수 상당수는 교양교육 과정을 가르치고, 그중 일부 과정은 기초가 되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짜여 있다. 맥머트리는 바로 이런 과목이 AI 오남용에 가장 취약하다고 본다. 많은 교수가 깊고 꾸준한 읽기와 긴 글쓰기가 노력할 가치가 있다고 학생들을 설득하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고, 적지 않은 학생이 읽기 자료를 AI에 넣어 요약을 받거나 과제 작성을 AI에 의존한다고 전했다. 맥머트리는 이것이 교수들을 슬프게 했다고 쓴다.
지키려다 잃는 것
맥머트리가 정리한 첫 번째 관찰은 교수들이 잃어버린 것을 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교수들이 수업 밖 과제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교수가 글쓰기를 강의실 안으로 옮기고 있다. 그 결과 연구 보고서나 긴 에세이를 더는 내지 않고, 수업 시간에 다룰 수 있는 내용도 줄여야 했다. 교수들은 학생이 혼자 복잡한 생각과 씨름하고, 배운 것을 종합하고, 자기만의 통찰에 이르는 경험을 잃었다는 데 슬퍼한다. 많은 교수가 50분짜리 글쓰기 활동을 여러 번 하는 것은 그것과 같지 않다고 말했다고 그는 전한다.
교수들은 읽기 분량을 줄이거나, 읽기를 수업 시간에 하거나, 퀴즈로 읽기를 확인하기도 한다. 맥머트리는 이런 조치가 일부 교수에게 학생의 비위를 맞추는 동시에 학생을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쓴다. 그리고 그것이 학생과 쌓아야 한다고 느끼는 신뢰와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고 전한다.
이 칼럼의 해석으로는, 이 대목이 해당 뉴스레터의 핵심이다. 이 칼럼은 강의실 안 글쓰기가 작성 과정을 확인하기 쉽게 하는 대신, 학생이 혼자 오래 생각할 기회를 줄일 수 있다는 긴장에 주목한다. 진정성을 지키는 장치가 교육의 목표 일부를 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칼럼은 맥머트리가 전한 교수들의 슬픔을 이러한 교환의 문제로 읽는다.
요령이 아니라 목적을 묻고 싶다
두 번째 관찰은 교수들이 학부 교육의 목적과 설계에 대한 논의를 더 원한다는 것이다. 맥머트리에 따르면 참석자 다수는 AI로 부정행위를 하는 학생에 대해 복도에서 불평하는 대화 말고는, 교육의 미래를 다루는 캠퍼스 차원의 대화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요령과 팁을 원하지 않는다. 학생이 그 일을 AI에게 맡기고 싶어 할 때 기초 지식과 능력을 어떻게 길러 줄지, 말하기나 멀티미디어 소통이 한때 읽기가 길러 주던 능력을 똑같이 길러 줄 수 있는지, 학생이 배움의 힘든 과정을 해내도록 어떻게 설득할지를 논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콜로키엄을 기획한 어사이너스 칼리지의 교육학 교수 스테퍼니 맥클러는 맥머트리에게 보낸 글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말로 옮기면 "AI에 서둘러 대응하느라, 우리가 글쓰기의 가치, 특히 교양교육이 길러 내는 종류의 사고에서 글쓰기가 갖는 가치를 따져 보지도 않은 채 '탈문해 사회에 살고 있다'는 판정을 성급히 받아들였다는 점이 걱정된다"는 뜻이다. 맥클러는 이 콜로키엄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대학 글쓰기에 대해 하나의 입장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교양교육의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룰 가장 좋은 수단에 대해 꾸준하고 신중하게 탐구하도록 돕는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감시, 시간, 그리고 종이
맥머트리는 교수들 사이의 차이도 전한다. 일부 교수는 학생의 글이 본인의 것인지에 대한 감을 확인하는 데 AI 탐지기가 도움이 되고, 학생에게 책임을 물을 때 대화를 시작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교수들은 탐지기가 불신을 키우거나, AI 사용을 '증명'할 수 없어 들이는 노력만큼의 가치가 없다며 쓰지 않는다. 맥머트리는 직접적인 충돌이나 비난은 거의 듣지 못했고, 각자의 맥락에서 무엇이 통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에 가까웠다고 썼다.
그에 따르면 좋은 수업은 시간이 더 많이 드는 일이 됐다. 교수들은 마찰 없는 경험을 좇는 사회에서, 어려운 글을 탐색하고 복잡한 생각과 씨름하고 자기 생각을 세우는 그 분투가 왜 가치 있는지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일부 교수는 강의실에서 모든 기술 사용을 금지했고, 인쇄된 읽기 자료만 쓰는 교수들도 있다. 맥머트리에 따르면 그 교수들은 산만함을 막고 읽기 능력을 돕기 위해서라고 말했고, 몇몇은 종이에 직접 표시하며 읽는 것이 학생이 글에서 더 많은 것을 얻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앞으로에 대한 전망은 엇갈렸다. 맥머트리는 일부 참석자가 AI를 되돌릴 수 없다며 탈문해 사회로 가고 있다고 걱정한 반면, 다른 참석자들은 휴대폰과 AI 같은 기술이 초중등 학생에게 미치는 해로운 영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커지는 데서 희망을 찾았다고 전한다.
한국 영어 교실에 남는 질문
이 칼럼의 해석으로는, 이 뉴스레터는 대학 교양교육의 이야기지만, 그 질문을 한국 중·고등학교 영어 학습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학생이 영어 지문을 AI에 넣어 요약과 해석을 얻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때 학생이 문장을 따라가며 스스로 의미를 맞춰 보는 과정은 그 요약에 들어 있지 않다. 맥머트리가 전한 교수들의 걱정, 곧 결과물은 남지만 씨름하는 경험이 사라진다는 걱정은 영어 독해에서도 같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이 칼럼은 교사와 학부모가 이 뉴스레터에서 빌려 올 것은 특정 대응책보다 맥클러의 태도라고 본다. 강의실 안 글쓰기, 종이 읽기, 탐지기 사용의 득실은 교육 목표에 비추어 따져야 한다. 맥머트리는 특히 AI 탐지기 사용을 두고 교수들의 견해가 갈렸다고 전한다.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어떻게 막을까'가 아니라 '이 읽기와 쓰기로 학생에게 무엇을 길러 주려 했는가'다. 그 답이 분명하면, 어떤 활동을 수업 안으로 옮기고 어떤 활동을 학생에게 맡길지도 그 목표에 비추어 고를 수 있다. 맥클러의 말처럼, 어떤 답에 이르든 중요한 질문을 먼저 묻는 일이 출발점이다.
출처: Beth McMurtrie, "Teaching: 'Liberal education in the age of artificial everything'", 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 2026년 10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