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화면을 끄라는 교사 노조 회장, 그리고 한국 학부모가 읽어야 할 신호
미국 교사 노조 회장 와인가튼이 어린 학생의 화면과 인공지능 사용을 줄이고 비판적 사고와 협업, 인내를 가르치자고 제안했다. 스웨덴·에스토니아의 후퇴 사례와 한국 학부모가 이번 주 자녀와 바꿔볼 한 가지를 짚는다.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교사 노조를 이끄는 랜디 와인가튼이 지난 5월 27일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 연설에서 내놓은 제안은 단순한 기술 반대론이 아니다. 그는 아이들이 주의력과 정서의 위기를 겪는데 교사들은 이 문제를 도울 방법을 거의 안내받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처방은 두 갈래다. 어린 학생일수록 기술 사용을 줄이고 모든 학생에게 비판적 사고와 의사소통, 협업, 인내를 가르치라는 것이다. 한국의 중·고등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 이 진단은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초등 2학년까지 화면을 끄자는 제안
와인가튼은 인공지능이 몰고 오는 "지각변동"에 미국 학교가 준비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을 닷컴 혁명보다 큰 산업혁명의 한복판으로 규정했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이를 방임한다고 비판했다. 제안 자체는 구체적이고 단호하다. 초등 2학년까지는 평가를 포함해 컴퓨터 화면 사용을 사실상 금지하자고 했다. 초등학교에서는 학생을 향한 인공지능 자체를 막자고 했다. 어린아이는 알고리즘이 내미는 지름길 없이 기초 역량을 먼저 쌓아야 한다는 논리다.
이 대목에서 한국 학부모가 떠올릴 장면은 분명하다. 태블릿으로 한글을 떼고 앱으로 연산을 익히는 저학년 학습 시장은 이미 두텁다. 와인가튼의 주장은 저학년 학습 시장의 흐름에 정면으로 묻는다. 빠른 정답 도달이 정말 학습인가. 그는 노조 회장이면서도 "크롬북을 불태우자"는 식의 극단과는 선을 그었다. 기술을 적으로 돌리는 대신 나이에 맞는 사용량을 다시 설계하자는 쪽이다. 자녀가 어릴수록 화면을 늦추는 선택이 손해가 아닐 수 있다는 신호다.
16세까지 막자는 소셜 컴패니언 챗봇
와인가튼은 인간 관계를 흉내 내는 "소셜 컴패니언" 챗봇에 아이들이 16세 전에는 접근하지 못하게 하자고 했다. 사람과의 관계를 모사하는 대화 상대를 어린 시기에 곁에 두는 일을 위험으로 본 것이다. 이 제안은 추상적 우려가 아니라 나이라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초등은 학생용 인공지능 자체를 막고 정서적 동반자 역할을 하는 챗봇은 고등 초입까지 미루자는 단계적 설계다.
한국 학부모가 점검할 지점은 가까이 있다. 학원이 끝난 늦은 밤, 자녀가 스마트폰으로 누구와 또는 무엇과 대화하는지를 부모는 잘 모른다. 입시 압박이 큰 시기일수록 아이는 판단을 들어줄 상대를 찾는다. 대화 상대가 사람을 흉내 낸 알고리즘이라면 위안은 빠르지만 관계의 근육은 자라지 않는다. 와인가튼의 16세 기준은 자녀의 정서적 의지 대상이 어디로 향하는지 부모가 한 번쯤 확인하라는 권고로 읽힌다.
종이 교과서로 돌아간 나라들
와인가튼은 교육 기술을 일찍 받아들인 여러 나라가 방향을 되돌리고 있다고 짚었다. 스웨덴은 종이 교과서로 돌아갔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어린아이의 높은 화면 시간이 약한 언어 능력과 연결된다는 연구가 나왔고 에스토니아는 사람과 사람의 상호작용을 더 요구한다. 이탈리아는 손글씨와 전통적 수업을 다시 강조한다. 미국에서도 31개 주가 어떤 형태로든 휴대전화 금지를 도입했다.
흥미로운 점은 후퇴를 결정한 곳들이 기술 후진국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디지털 교육을 앞서 밀어붙였던 나라들이 먼저 속도를 줄였다. 한국 학부모가 사교육비를 디지털 학습 기기와 구독형 앱에 점점 더 쏟는 흐름과 겹쳐 보면 질문이 생긴다. 앞서간 나라들이 거둬들이는 방향으로 가정의 예산이 움직이고 있는가. 손글씨와 종이, 사람 사이의 대화가 구식이 아니라 의도된 선택으로 재평가되는 중이다.
프롬프트 한 번에 사실이 나오는 교실
와인가튼은 반복 주입식 수업, 이른바 "드릴 앤 킬"을 비판했다. 어떤 사실이든 프롬프트 한 번으로 꺼낼 수 있는 시대에는 암기보다 지식을 적용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소통하고 협업하는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고 했다. "복잡한 문제에 청년을 진짜로 대비시키려면 함께 일하고 문제를 푸는 학생을 길러내는 것이 목표다." 그가 직접 한 말이다.
이 진단은 한국의 내신과 수능 구조에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정해진 답을 빠르고 정확하게 재생하는 훈련은 여전히 점수로 보상받는다. 사교육 상당수도 정답 재생 속도를 끌어올리는 데 맞춰져 있다. 그런데 정보 검색이 공짜가 된 세상에서 재생 능력의 시장 가치는 떨어진다. 와인가튼은 암기의 값이 헐값이 된 교실을 가정한다. 자녀가 외워서 답하는지, 이해해서 적용하는지를 부모가 구분해 보는 일이 점수표보다 먼저다.
협업을 소프트 스킬이라 부른 대가
와인가튼은 협업과 의사소통을 "소프트 스킬"이라 부른 것이 교육이 저지른 최악의 일 중 하나라고 했다. 적용 학습, 문제 해결, 의사소통, 협업, 인내. 이 모두가 인공지능 시대의 청년에게 필요한 능력이고 오히려 더 경쟁력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그는 학교가 프로젝트 기반과 체험, 진로 연계를 포함한 능동적 학습을 모든 학년에서 표준으로 삼도록 재설계하자고 제안했다.
한국 학부모의 학원 선택 기준에 이 말은 직접 닿는다. 대다수 선택은 진도와 점수 상승 속도로 갈린다. 협업이나 인내 같은 항목은 측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부차로 밀린다. 와인가튼의 주장은 학원 선택의 우선순위를 뒤집는다. 측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미뤄둔 능력이 자녀 진로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는 자산이라는 것이다. 학원 설명회에서 진도표만 볼 것이 아니라, 아이가 다른 학생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시간이 있는지를 묻는 부모가 늘어날 만하다.
규제하면서 동시에 가르치는 두 갈래
와인가튼의 제안은 규제 일변도가 아니다. 그는 학교에 팔리는 인공지능 제품에 엄격한 국가 안전·프라이버시 기준을 세우자고 했다. 기술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독립 재정의 연구 컨소시엄도 만들자고 했다. 인공지능이 부른 환경적·사회적 비용과 일자리에서 밀려나는 노동자 문제를 메우려 빅테크 기업 수익에 새 세금을 매기자는 제안도 내놓았다. 동시에 AFT는 교사 수천 명에게 인공지능의 작동 방식을 가르치는 쪽으로 움직인다. 지난해 뉴욕에서 2,300만 달러를 들여 출범시킨 인공지능 아카데미가 그 통로다.
막으면서 가르친다는 두 갈래가 한 사람 입에서 나온다. 어린 시기에는 줄이고, 가르치는 사람부터 기술을 이해하게 만든다. 한국 가정에 이 균형은 실용적 기준을 준다. 인공지능을 무조건 끊는 것도, 무비판적으로 사들이는 것도 답이 아니다. 자녀의 나이와 발달 단계에 맞춰 노출의 양과 시점을 부모가 직접 설계하는 일이 사교육비를 어디에 쓸지 정하는 일만큼 중요해진다.
이번 주 자녀와 바꿔볼 한 가지
이번 주에 바꿔볼 한 가지는 작다. 자녀가 무언가를 모를 때 곧장 챗봇이나 검색으로 답을 꺼내는지, 아니면 먼저 스스로 생각하고 가족이나 친구와 말로 풀어보는지 한 장면만 관찰하는 것이다. 와인가튼이 가리킨 핵심은 정답의 속도가 아니라 적용과 협업, 인내다. 그 세 가지는 점수표에 잘 잡히지 않지만 저녁 식탁의 대화 한 번으로 드러난다.
관찰 다음은 질문 하나를 바꾸는 일이다. 숙제를 끝낸 자녀에게 "다 했어"나 "몇 점이야" 대신 "그건 왜 그렇게 생각했어"를 한 번 물어보는 것. 이 질문은 재생이 아니라 사고를 요구한다. 답이 막히면 아이는 스스로 근거를 찾고 부모와 말로 풀어내는 연습을 하게 된다. 화면을 빼앗는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답을 꺼내는 통로를 잠깐 늦추고 그 빈 자리를 대화로 채우는 작은 전환이다. 와인가튼이 국가 단위로 제안한 설계를 가정 단위로 옮기면, 그 출발점은 이 한 번의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