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정책
분리된 교실이 만드는 두 개의 손실
한국어 능숙도를 이유로 다문화·중도입국 학생을 KSL 교실에 분리하는 관행이 교과 언어 발달과 학업 성취 모두에 장기 손실을 만든다는 분석. 중학교·고등학교 교사를 위한 현장 관점.

2023년 기준 국내 다문화 학생 수는 18만 명을 넘었다. 그 가운데 중도입국 학생, 즉 외국에서 태어나 한국 학교에 편입한 학생의 비율은 꾸준히 늘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입학 직후 '예비학교' 또는 'KSL(한국어로서의 제2언어)' 전담 과정으로 배치된다. 표면적 목적은 명확하다. 한국어를 먼저 갖추고 나서 교과 수업에 합류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 연구 결과들은 이 논리가 전제하는 순서 자체가 틀렸음을 반복해서 보여 준다. 분리된 언어 교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학생이 교과 학습에서 회복하는 데 필요한 시간도 함께 길어진다. 이 글이 던지는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학생을 보호하고 있는가, 아니면 손실을 유예하고 있는가.
분리 결정이 선의로 읽히는 이유: 한국 교실의 로컬 좌표
교사 입장에서 분리 결정은 직관적으로 옳아 보인다. 중학교 3학년 과학 수업에서 '산화·환원 반응'을 설명하는 교사가, 한국어로 일상 대화조차 버거운 학생을 같은 교실에 앉혀 두는 것은 교사에게도, 학생에게도 무리처럼 느껴진다. 그 학생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눈에 보이고, 그 좌절감이 학생의 얼굴에도 역력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분리는 그 불편함을 해소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교육부의 다문화 학생 지원 지침 역시 이 방향을 뒷받침해 왔다. 예비학교 과정은 한국어 의사소통 능력을 집중적으로 키우는 목적으로 설계되었고, 일부 교육청은 KSL 이수 시간을 학교 배치의 선행 요건처럼 운영한다. 정책 지표 자체가 '한국어 능숙도 향상'을 성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교사와 학교 관리자는 분리된 KSL 교실에서 시간을 늘리는 것을 합리적 선택으로 받아들인다. 구조가 분리를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중학교·고등학교 교과 교사는 다문화 교육이나 제2언어 습득에 대한 전문 연수를 거의 받지 않는다. 교원 양성 과정에서 이중 언어 학습자를 위한 교수법은 선택 과목조차 드물다. 교사가 다문화 학생을 교과 수업 안에서 어떻게 지원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 학생을 '전문가'에게 넘기는 것이 책임을 다하는 행동처럼 여겨진다. 분리는 무지에서 비롯된 선의이며, 그 선의가 문제를 구조화한다.
이 구조 안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 하나가 조용히 묻힌다. 한국어를 먼저 완전히 갖추고 나서 교과 수업에 들어간다는 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언어 습득과 교과 학습은 병렬 과정이며, 어느 한쪽을 멈추고 다른 한쪽을 기다리는 모델은 언어 습득의 기본 원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교과 언어는 교과 수업 안에서만 자란다: CALP와 CBI의 논리
언어 연구자 짐 커민스는 1970년대 후반, 제2언어 학습자의 언어 능력을 두 층위로 구분했다. 하나는 BICS(기본 대인 의사소통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CALP(인지·학문적 언어 능숙도)다. BICS는 일상 대화, 쉬는 시간의 잡담, 점심 메뉴를 묻는 언어다. 이 수준은 제2언어 학습자가 노출 환경에서 1~2년 안에 도달할 수 있다. 반면 CALP는 교과서 설명문을 읽고, 논증 구조를 파악하며, 개념 간의 관계를 언어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이 수준에 도달하려면 평균 5~7년의 교과 언어 노출이 필요하다는 것이 커민스의 주요 발견이다.
결정적인 지점은 여기에 있다. CALP는 교과 수업 밖에서 형성되지 않는다. KSL 교실에서 배우는 한국어는 주로 BICS 수준에 머문다. '산화'가 무엇인지, '공급과 수요의 탄성'이 어떤 개념인지, '지층의 형성 과정'을 문장으로 어떻게 설명하는지—이런 언어는 과학 수업과 사회 수업 안에서 그 맥락과 함께 배울 때만 의미 있게 습득된다. 분리된 KSL 교실에서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교과 수업에 복귀했을 때 여전히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학생은 BICS는 늘었지만 CALP는 전혀 성장하지 않은 상태로 돌아온 것이다.
내용 기반 언어 교수(CBI, Content-Based Instruction)와 내용·언어 통합 학습(CLIL, Content and Language Integrated Learning)은 이 문제에 대한 응답으로 발전해 왔다. 핵심 원리는 간단하다. 언어는 내용을 배우는 과정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습득된다는 것이다. 교과 내용이 언어 학습의 재료가 되고, 언어 발달이 교과 이해를 심화하는 구조가 동시에 작동한다. 분리 모델이 전제하는 '먼저 언어, 그다음 내용'의 순서는 CBI와 CLIL의 관점에서는 성립하지 않는 가정이다.
구체적인 장면 하나를 상상해 보자. 고등학교 1학년 통합과학 수업에서 '생태계의 에너지 흐름'을 다루는 단원이다. 필리핀 출신 중도입국 학생 A는 KSL 교실 배치로 이 단원 수업 전체를 놓쳤다. 나중에 KSL 교실에서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라는 단어를 단어 목록으로 외웠지만, 그 개념들이 에너지 흐름의 방향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도표를 읽으며 교사의 설명을 들으며 질문하고 답하는 경험은 없었다. 내신 시험에서 이 단원이 출제되었을 때, A가 틀린 것은 단어를 몰라서가 아니라 개념 구조 언어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분리는 단어를 가르쳤지만 사고 언어는 빼앗았다.
그러나 한국 교실은 이 논리를 그대로 실행할 수 없다: 구조적 균열의 현실
이론이 옳다고 해서 현장이 곧바로 바뀌지는 않는다. 한국 교실에는 CBI나 CLIL을 온전히 실행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조건들이 겹쳐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내신 상대평가 구조다. 고등학교 내신은 석차 등급제로 운영되며, 같은 교실 안에서 학생들은 서로 경쟁한다. 교사는 수업의 속도와 깊이를 조절해야 하는 현실적 압력을 받는다. 그 조절이 다른 학생들의 수업 기회를 줄인다는 인식이 교실 안에서 긴장을 만든다.
학급 규모 역시 현실적 제약이다. 한국의 중학교 평균 학급당 학생 수는 여전히 25명 내외이며, 교사 1인이 교과 수업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한국어 지원이 필요한 학생에게 개별 스캐폴딩을 제공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 보조 교사나 이중 언어 지원 인력이 배치된 학교는 극소수이며, 그마저도 비정규직 형태가 많아 지속성이 없다. 교사가 혼자 수업을 이끌면서 언어 지원을 병행하는 구조는 교사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요구를 하는 것이다.
교사 양성 과정의 공백도 빠질 수 없다. 사범대학 및 교직 과정에서 이중 언어 학습자 지원, 언어적 스캐폴딩, CBI 기반 수업 설계를 체계적으로 배우는 예비 교사는 거의 없다. 현직 연수 역시 단편적 특강 수준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교사가 이 문제에 관심이 있어도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기 어려운 환경이다. 그 결과 교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익숙한 해결책, 즉 분리로 돌아간다.
정책 지표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교육청이 다문화 학생 지원 사업의 성과를 측정할 때 주로 사용하는 지표는 'KSL 이수 시간', '한국어 능숙도 검사 점수', '예비학교 졸업 인원'이다. 교과 수업 참여율이나 교과 성취도 격차 추이는 지표에 포함되지 않거나, 포함되더라도 부차적이다. 측정되지 않는 것은 개선되지 않는다. 분리를 유지하는 인센티브가 정책 구조 안에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분리의 장기 비용: 수능 앞에서 드러나는 누적 손실
분리의 비용은 단기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KSL 교실에서 한국어를 익힌 학생이 교과 수업에 복귀하면, 겉보기에는 '성공적 적응'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학생이 누적해 온 교과 학습의 공백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넓어진다. 중학교 1학년 때 놓친 과학의 개념 기반이, 고등학교 1학년 통합과학에서 전제 지식으로 요구된다. 중학교 사회의 기초 개념어를 갖추지 못한 채로, 고등학교 한국사·경제를 배워야 한다. 교과 언어의 누적 구조는 초기 공백을 지수적으로 증폭시킨다.
수능은 이 누적 손실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수능 국어 영역의 비문학 지문은 과학·사회·기술·경제 영역의 고밀도 개념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교과 수업에서 이 언어를 지속적으로 접한 학생과, 분리된 KSL 교실에서 일상 한국어를 익힌 학생 사이의 격차는 수능 시험지 앞에서 수치로 드러난다. 다문화 학생의 수능 응시율과 4년제 대학 진학률이 비다문화 학생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통계는 이 누적 과정의 결과다.
학업 중단 통계는 더 직접적인 경고를 보낸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다문화 학생의 학업 중단율은 전체 학생 평균의 약 3배에 달하며, 중도입국 학생의 경우 그 비율은 더 높다. 학업 중단의 이유로 학생들이 꼽는 항목 중에는 '수업을 따라갈 수 없어서'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수업을 따라갈 수 없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한국어 능력 부족이 아니라, 교과 개념 언어의 누적 공백이다. 그 공백은 분리 결정이 만든 것이다.
이 비용은 개인의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 학업을 중단한 학생은 노동 시장에서 더 취약한 위치에 놓이고, 그 취약성은 사회적 비용으로 전환된다. 다문화 학생의 교육 격차가 구조적으로 재생산된다면, 이는 교육 불평등의 문제이자 사회 통합의 문제가 된다. 분리 관행이 생산하는 손실은 교실 안에서 시작하지만, 그 끝은 교실 밖 훨씬 먼 곳까지 이어진다.
교사가 내일 바꿀 수 있는 한 가지: 핵심 개념어를 시각화하는 일
교사에게 이 모든 구조를 혼자 바꾸라고 요구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사가 내일 수업에서 한 가지를 다르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핵심 개념어를 눈에 보이게 만드는 일이다. 단원 첫 수업에서 그날 등장할 핵심 단어 5~7개를 칠판 한 구석에 적어 두는 것, 그 단어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화살표나 도식으로 보여 주는 것, 수업 내내 그 단어들을 의도적으로 반복하며 문장 안에서 사용하는 것—이 행동은 추가 준비 시간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것이 효과가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어 능숙도가 낮은 학생은 교사의 말 전체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칠판에 고정된 단어와 도식을 닻으로 삼아 수업의 흐름을 부분적으로라도 붙잡을 수 있다. 전체를 이해하지 못해도, 오늘 수업에서 '공급'과 '수요'가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힘이라는 것을 시각적으로 인식하는 경험이 쌓인다. 그 경험의 누적이 CALP의 재료가 된다. 교사가 전문 훈련 없이도 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언어 지원이 여기에 있다.
덧붙여, 수업 언어를 한 번쯤 점검해 보는 것도 권한다. 교사 자신이 수업 중에 사용하는 언어가 얼마나 전제 지식을 깔고 있는지, 교과서 밖의 관용 표현이 얼마나 빈번하게 등장하는지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달라진다. '이 정도는 알겠지'라고 생각하며 넘기는 설명이 어떤 학생에게는 완전한 단절이 되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을 줄이는 것이, 분리 없이도 다문화 학생이 수업 안에 머물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다.
이 글을 읽는 교사가 내일 교실로 돌아갈 때, 단 하나만 기억하면 된다. 그 학생이 교실 안에 있어야 배운다는 것. 한국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교실 안에 함께 있으면서 한국어가 자라게 하는 것이다. 그 방향이 맞다면, 오늘의 수업을 조금 다르게 설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18만 명이 넘는 다문화 학생 중 상당수가 지금 이 순간, 과학 수업과 사회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교실에 앉아 있다. 그 결정을 내린 어른들은 모두 그 학생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교실 밖에 세워 둔 시간이, 그 학생에게 돌아오지 않는 무엇을 빼앗고 있지는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