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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정책

학생이 직접 쓰는 AI 사용 규칙, 한국 학교에 던지는 질문

미국 보스턴에서 학생이 주도해 학교용 AI 정책 초안을 설계한다. EdWeek 13% 통계와 ABC 학구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 수행평가·디지털 리터러시 과제를 짚는다.

MakeItClear읽는 시간 8분

학생이 직접 쓰는 AI 사용 규칙, 한국 학교에 던지는 질문

학교 현장에 AI가 빠르게 침투하는 속도를 정책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미국 교육 전문지 EdWeek은 올해 7월 보스턴에서 미국교육감협회(AASA)와 MIT 미디어랩 산하 비영리단체 Day of AI가 공동 주최하는 3일간의 워크숍을 보도했다. 주별로 교육감 1명과 그가 선정한 학생 대표 2명이 모여 학군이 채택할 수 있는 모델 AI 사용 정책 초안을 함께 설계한다. 주목할 지점은 정책 문안 작성을 학생이 주도한다는 것. EdWeek 자체 조사에서 학교의 AI 정책이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명확하다고 답한 비율이 13%에 그친 가운데 등장한 실험이다. 한국의 중·고 영어 수행평가, 자유학기제 프로젝트, 고교학점제 탐구 활동에서도 동일한 공백이 드러나는 만큼 이 사례를 결코 강 건너 불로 볼 수 없다.

13%라는 숫자가 가리키는 정책 공백

EdWeek가 인용한 자체 분석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최소 5개 주가 학군에 AI 사용 정책 수립을 의무화하기 시작했지만, 대다수 학군은 아직 허용 가능한 사용 범위, 교사의 수업 활용 방식, 개인정보 보호 가드레일을 명문화한 공식 문서를 갖추고 있지 않다. 정책이 명확하다고 답한 비율 13%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교실 안에서 매일 일어나는 사소한 결정—이 보고서에 ChatGPT를 써도 되는가, 영작 첨삭을 받아도 되는가, 풀이 과정 힌트는 AI에 물어도 되는가—이 모두 교사 개인의 직관에 떠넘겨져 있다는 뜻이다.

한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추진하면서도, 정작 단위 학교의 수행평가 채점 기준표에 'AI 도구 사용 시 어디까지 허용되는가'가 적힌 사례는 드물다. 중학교 자유학기 주제선택, 고1 통합사회 보고서, 고2 영어 에세이 수행에서 학생들은 이미 생성형 AI를 활용하지만, 교사는 표절 여부와 학습 효과 사이에서 매번 새 판정을 내려야 한다. 정책이 없으면 갈등은 학생-교사 신뢰 관계 위로 떨어진다. 미국이 13%에 놀라 학생들을 보스턴으로 부른 이유는 그 갈등 비용이 더 이상 감당 가능한 수준이 아니라는 인식이다.

케네디 상원 의사당 모형 안에서 진행되는 입법 시뮬레이션

이번 보스턴 행사의 형식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교육감들은 AI 윤리 사용, 교실에서의 AI 미래 같은 주제로 별도 연수를 받는 동안, 학생들은 에드워드 M. 케네디 인스티튜트에 복원된 미국 상원 의사당 모형 안에서 입법 시뮬레이션을 통해 정책 문안을 토론·합의한다. Day of AI 사무총장 제프 라일리는 "완전한 친(親)AI 진영부터 강한 반대 진영까지 학생 입장이 폭넓게 갈릴 것이며, 합의에는 작업과 토론, 타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행사 기획자들은 일부러 정책의 방향성—허용 쪽이냐 제한 쪽이냐—을 사전에 정하지 않았다. 학생 스스로 진정성 있게 느끼는 규칙을 짜야 의미가 있다는 판단이다.

한국 학교에서도 비슷한 형식이 가능하다. 학생회, 학년 대의원, 동아리 대표가 모여 "우리 학교 AI 사용 헌장"을 토의하는 자리를 학기 초에 정례화하면, 단순한 규칙 통보가 아니라 학생이 동의한 규범이 된다. 모의 국회·모의 UN 같은 형식을 빌려, 영어과·국어과·정보과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식도 떠올릴 만하다. 라일리가 "역사적으로 교육의 새 흐름은 교육자만 만들어왔다"며 이를 뒤집는 결정을 내린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학생이 펜을 잡아야 하는가

학생 주도가 단순한 민주적 제스처가 아닌 이유는 라일리의 발언에 압축돼 있다. 그는 매사추세츠 주 교육감(state education commissioner)과 교장·교육감을 두루 지낸 인물로, "아이들은 새 기술을 가장 빠르게 받아들이고 적응한다. 즉 그 혜택과 그늘을 가장 먼저 체감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이 기술에 더 자연스러운 감각을 갖고 있다면, 논의에 포함시켜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그의 질문은 한국 교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실제로 EBS 강의 요약, 수능특강 지문 분석, 내신 영어 본문 학습에 AI 챗봇을 쓰는 학생은 이미 다수다. 학원가에서도 단어장 관리, 오답 노트 정리, 영작 1차 첨삭에 생성형 AI를 끼워 넣은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런데 이 도구를 가장 정교하게 다루는 사용자—학생—의 목소리가 정작 규칙 제정에는 빠져 있다. 라일리는 이번 워크숍 결과물을 "전국적으로 아이들이 이 사안을 어떻게 느끼는지에 대한 진짜 바로미터"로 표현했다. 한국 단위 학교의 학생자치회, 학교운영위원회 학생 참관, 학년별 학급 회의 같은 기존 통로를 활용하면 비슷한 바로미터를 만들 수 있다.

지원 절차에서 드러난 것 — 캘리포니아 ABC 통합학구 사례

EdWeek 기사에는 이번 보스턴 행사에 참여하는 한 학군의 선발 과정이 구체적으로 소개된다. 캘리포니아 남부 ABC 통합학구의 지나 지트로 교육감은 학생 17,000명 규모의 학구에서 두 명의 학생 대표를 데려간다. 관심 학생은 "왜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 AI를 다뤄본 경험은 무엇인지"를 담은 영상을 제출해 지원했다. 10명이 지원했고, 그중 점수가 가장 높은 두 명이 선발됐다. 한 명은 해당 학구가 2017년에 신설한 AI 진로·직업기술교육(CTE) 트랙에 재학 중이고, 다른 한 명은 AI를 활용해 비영리단체를 직접 만들어 운영해온 학생이다.

두 가지 디테일이 눈에 띈다. 첫째, 지원자가 영상으로 자기 경험을 진술하게 한 절차 자체가 디지털 리터러시 평가를 겸한다. 둘째, 2017년에 이미 AI CTE 트랙을 만든 학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정책 논의에 참여할 학생을 길러내는 데도 7~8년의 누적이 필요했다는 의미다. 한국 고교학점제 진로선택과목, 직업계고 신산업 분야 학과 개편, 영재학급 AI 융합 트랙이 지금 어느 단계에 있는지 점검할 거울이 된다. 정책 토론에 학생을 부르려면, 그 학생이 최소한의 기술적 어휘와 윤리적 사유를 갖출 시간이 학교에 누적되어 있어야 한다.

한국 영어 수행평가가 가장 먼저 손대야 할 항목

모델 정책의 구체 문안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한국 학교가 당장 검토할 수 있는 항목은 비교적 분명하다. 첫째, 'AI 허용 범위'의 단계화. 영어 에세이 수행평가라면 ① 주제 브레인스토밍까지만 허용 ② 개요 작성까지 허용 ③ 초고 첨삭까지 허용 ④ 전면 금지 같은 4단계 등급을 과제마다 명시하는 방식이다. 둘째, '프롬프트 제출' 의무화. 학생이 AI에 입력한 질문 전문을 보고서 부록으로 제출하게 하면, 표절 여부 판정이 아니라 학습 과정 평가로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셋째, '도움 정도 표기'. 논문에서 흔한 기여도 표기처럼, 어느 부분이 본인 작성이고 어느 부분이 AI 보조인지를 학생이 자기보고하는 칸을 만든다.

이 세 가지는 모두 EdWeek 기사가 지적한 "개인정보 가드레일과 최선의 교육 보장"이라는 두 축에 부합한다. 수능 국어·영어 영역이 여전히 종이 시험인 한국에서도, 내신과 수행평가에서 이 규칙이 명문화되지 않으면 사교육 영역에서 먼저 회색지대가 굳어진다. 학원이 "우리는 AI로 첨삭한다"고 광고하는 동안 학교가 "AI 사용 금지"만 외치면, 그 격차는 학생의 자기주도학습 역량이 아니라 가정의 정보 격차로 환산된다.

모델 정책이 공유되는 방식 — AASA의 회원 학군 네트워크

이번 워크숍의 결과물은 행사 종료 후 AASA가 자체 회원 학군 수천 곳에 공유할 예정이다. 즉, 보스턴에서 만들어진 한 장의 문서가 미국 전역에 표준 템플릿처럼 퍼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한국에서 이에 견줄 수 있는 통로는 17개 시·도교육청, 교육부 정책연구과제,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의 모델 사례집,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채점기준 가이드 등이다. 단위 학교가 백지에서 규칙을 짜는 부담을 덜어주려면, 이런 상위 기관에서 "학생 참여형 AI 사용 정책 모델안"을 먼저 제시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그 모델안에는 최소한 다음이 담겨야 한다. 학생 의견 수렴 절차, 학년별 차등 적용, 교과별 허용 범위 매트릭스, 위반 시 절차적 권리 보장, 정기 개정 주기. 미국 사례가 흥미로운 건, 이 모든 항목을 어른이 결정해 학생에게 전달하는 대신, 학생이 입법 시뮬레이션 안에서 직접 토론해 도출한다는 점이다.

정책 다음에 와야 할 것 — 디지털 리터러시 수업의 위치

EdWeek 기사가 거듭 지적하는 또 하나의 공백은 "전문성 개발(professional development)"이다. 정책 문서가 있어도, 교사가 AI를 언제·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수가 없으면 문서는 종이로 남는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시점에 맞춘 교원 연수, 학교당 디지털 튜터 배치, 학부모 대상 디지털 시민성 설명회가 정책과 같은 호흡으로 굴러가야 한다.

학생 주도 정책이 만들어지더라도, 그 정책의 실행 주체는 결국 교사·학생·학부모 삼자다. 라일리가 "가드레일을 세우기 전에 먼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순서의 문제이지, 어른의 역할을 지운다는 뜻이 아니다. 학생이 초안을 쓰고, 교사가 현장 실행 가능성을 검증하고, 학부모와 지역사회가 동의하는 3단 구조가 갖춰질 때 13%의 명확성이 비로소 의미 있는 숫자로 올라간다. 보스턴 7월 워크숍의 결론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든, 한국 학교가 던져야 할 첫 질문은 같다. 우리 학교의 AI 규칙을, 우리 학생들에게 먼저 물어본 적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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