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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

시험 점수는 최저로 내려가는데 아이 손엔 AI가 쥐어졌다

2025년 PISA에서 수학과 읽기 평균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82개 참가국·지역 학생 다수는 숙제에 AI 챗봇을 쓴다고 답했다. 상대 순위 유지 뒤에 가려진 기초 학력 하락을 한국 학부모 관점에서 읽고 자녀 숙제 옆에서 확인할 한 가지를 제시한다.

MakeItClear읽는 시간 10분

시험 점수는 최저로 내려가는데 아이 손엔 AI가 쥐어졌다

2025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가 공개됐다. 수학과 읽기 평균 점수는 이 시험이 처음 치러진 이래 가장 낮았다. 같은 보고서에서 학생들이 숙제에 인공지능 챗봇을 쓰는 비율은 가파르게 올라갔다. 성적이 바닥으로 내려가는 곡선과 AI가 교실로 들어오는 곡선이 같은 시점에 겹쳤다. 두 곡선이 겹쳤다는 사실 자체가 곧 인과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같은 시점에 놓였다는 것만으로도 한 번은 멈춰 설 이유가 된다. 한국 학부모에게 이 그래프는 남의 나라 자료로 읽히지 않는다. 만 15세는 한국에서 중3에서 고1로 넘어가는 나이이고 내신과 수능이 본격적으로 무게를 얻기 시작하는 시기다. 내신과 수능이라는 익숙한 잣대 뒤에서 아이가 실제로 무엇을 익히는지 되묻게 만든다. 성적표의 숫자와 아이의 실력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글은 흔들리는 믿음을 한 번 점검하자는 제안이다. 숫자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숫자가 가리지 못하는 자리를 함께 보자는 것이다. 가려진 자리를 보는 데 필요한 것은 새 학원이 아니라 새 질문이다.

역대 최저라는 단어의 무게

PISA를 만들고 운영하는 곳은 파리에 본부를 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다. 시험은 2000년에 처음 등장했고 세계 여러 나라의 만 15세 학생을 같은 잣대로 잰다. 나라마다 교육과정과 언어가 달라도 같은 척도로 비교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시험의 힘이다. 그래서 한 나라의 점수가 내려가면 하락을 전 세계 흐름 속에서 읽을 수 있다. 한 나라만 유독 나빠진 것인지, 세계가 함께 내려간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는 뜻이다. PISA 2025 결과에서 전체 참가 학생의 수학과 읽기 평균은 기록이 남은 이래 가장 낮았다. '역대 최저'라는 표현은 특정 학년이나 특정 나라의 부진이 아니라, 시험이 시작된 2000년 이후 쌓인 모든 기록 가운데 가장 아래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단어는 한 번의 부진이 아니라 오래 쌓인 흐름의 끝자락을 가리킨다.

미국 15세 학생의 읽기 점수는 2022년보다 14점 내려갔다. 수학은 3년 사이 2점만 떨어졌지만 2018년과 비교하면 15점이 낮다. 3년이라는 짧은 창만 보면 선방한 듯 보여도, 창을 넓히면 하락의 폭이 드러난다. 짧은 구간의 안정에 안심하면 긴 구간의 추세를 놓치기 쉽다. 과학은 최근 몇 차례 시험에서 사실상 제자리였다. 세 과목의 온도가 서로 다르다는 점은 기억해 둘 만하다. 읽기가 가장 크게 흔들렸다는 사실은, 긴 글을 읽고 뜻을 세우는 힘이 먼저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한 해의 등락이라면 내신 한 학기 성적처럼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하락은 10년 단위로 쌓인 결과다. OECD 집계로 최근 시험 직전 10년 동안 평균 읽기 점수는 수업 1.5년어치만큼 내려갔고 수학은 1년어치가 넘게 빠졌다. 수업 1.5년어치라는 표현은 같은 나이의 학생이 예전보다 그만큼 덜 배운 상태로 시험장에 앉았다는 뜻에 가깝다. 읽기 점수는 2012년부터 급격히 무너졌고 수학과 읽기 모두 2009년 이후로 떨어지거나 정체했다. 우파 성향 싱크탱크 토머스 B. 포덤 연구소의 마이클 페트릴리 회장은 이번 점수를 "우려스럽다"고 표현했다. 미국의 또 다른 대형 시험인 전국학업성취도평가(NAEP) 결과와도 맞아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서로 다른 두 시험이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면 일시적 잡음으로 넘기기 어렵다. 학습 침체라 불리는 흐름은 10년도 더 전에 시작됐다. 한 학기 등수의 문제가 아니라 한 세대가 기초에서 밀려나는 문제다. 기초가 흔들리면 위에 쌓는 모든 학습이 함께 흔들린다.

숙제를 도와주는 손이 하나 더 늘었다

같은 PISA 보고서에는 학생 설문이 함께 실렸다. 82개 참가국·지역 학생 가운데 숙제 목적으로 AI를 "전혀 또는 거의 쓰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절반에 한참 못 미쳤다. 뒤집어 읽으면 다수가 어떤 식으로든 챗봇을 학습에 끌어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절반에 못 미친다는 수치는, 이제 AI를 쓰지 않는 쪽이 오히려 소수가 되어 간다는 신호로 읽힌다. 해외 학생들도 미국 학생만큼 AI 챗봇에 기대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특정 나라만의 현상이 아니라 82개 지역에서 공통으로 나타난 장면이다. 문화나 제도가 서로 달라도 챗봇 앞에서 학생이 보이는 행동은 비슷하게 수렴했다. 한국의 교실이라고 이 흐름에서 비켜 서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챗봇은 이미 많은 아이의 책상 위에 올라와 있는 도구다.

여기서 순서를 헷갈리면 안 된다. 점수 하락은 AI가 등장하기 훨씬 전, 2009년과 2012년부터 이미 진행됐다. 챗봇이 없던 시절에 무너지기 시작한 곡선이다. 그러니 AI가 하락의 원인이라고 이 자료만으로 단정할 근거는 없다. 인과를 성급히 붙이면 자료가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하게 된다. 원인을 하나로 지목하고 싶은 유혹은 크지만 이 보고서는 거기까지 답해 주지 않는다. 다만 이미 내려가던 곡선 위에 새로운 변수가 하나 얹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사교육비를 들여 학원에 보내는 집에서도 저녁에 아이가 챗봇으로 숙제를 끝내는 장면은 부모 눈에 잘 잡히지 않는다. 학원 진도표에는 채워지지만 아이 머릿속에는 남지 않는 학습이 늘어난다. 문제를 푼 흔적과 사고력이 자란 흔적은 다르다. 앞의 흔적은 공책과 진도표에 남지만 뒤의 흔적은 아이가 스스로 설명할 때만 드러난다. 이 차이를 놓치면 돈과 시간을 들이고도 헛짚을 수 있다. 그래서 부모가 확인해야 할 것은 아이가 무엇을 얼마나 풀었느냐가 아니라, 풀이가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느냐다. 이 물음은 성적표에는 적히지 않는다.

싱가포르와 대만이 버틴 자리

모두가 미끄러진 것은 아니다. 싱가포르와 대만, 일본은 이번에도 흐름을 거슬러 상위권을 지켰다. 유럽에서는 잉글랜드와 에스토니아가 버텼다. 많은 나라와 지역에서 수학과 특히 읽기 점수가 미국보다 더 크게 빠졌지만 이 소수의 시스템은 자기 자리를 지켰다. 세계 전체가 함께 내려가는 흐름 속에서도 예외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이 명단의 핵심이다. 하락이 모든 나라에 똑같이 닥친 자연재해가 아니라는 것을 이 예외들이 보여 준다. 예외가 있다는 것은 곧 방향을 바꿀 여지가 남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보고서는 이들이 왜 버텼는지까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유를 지어낼 일은 아니다. 자료가 답하지 않은 곳에서 앞세운 결론은 편집자의 상상일 뿐이다. 그래도 이 명단은 한국 학부모에게 질문을 남긴다. 싱가포르와 대만, 일본은 시험 중심 학습 문화를 한국과 상당 부분 공유한다. 한국 학부모가 학원 선택에서 자주 참고하는 이른바 입시 강국 모델이 여기에 포함된다. 같은 시험 문화를 지닌 이웃이 세계적 하락을 견뎠다는 사실은, 성적이 무너지는 게 정해진 운명은 아니라는 신호다. 적어도 하락을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으로만 돌릴 수는 없게 된다. 무엇이 차이를 만드는지 부모가 대신 답할 수는 없다. 그래도 이 질문을 손에 쥐면 다음 학원 상담에서 던지는 물음이 달라진다. 진도를 얼마나 빼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아이 머리에 남느냐를 묻게 된다. 질문이 바뀌면 학원을 고르는 기준도 함께 바뀐다. 기준의 변화야말로 이 명단이 한국 가정에 남기는 실질적인 몫이다.

상대 순위가 주는 위안의 함정

미국은 이번에 다른 나라와 견준 상대 순위를 사실상 유지했다. 다른 시스템이 더 크게 떨어진 덕분이다. 순위가 유지된 이유가 내 실력이 올라서가 아니라 남이 더 내려가서라면, 유지된 순위는 성취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등수는 그대로여도 안의 내용은 비어 갈 수 있다. 겉껍데기와 알맹이가 따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경고다. 기사는 이 상황을 '다소 역설적'이라고 짚었다. 페트릴리 회장의 지적이 여기서 날카롭다. "다른 선진국들도 특히 읽기에서 하락하고 있다는 사실은 차가운 위안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식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모든 아이가 어디에 있든 자신의 인지적, 학업적 잠재력을 온전히 이루기를 바라야 하는데, 지금 그런 일은 분명히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 진단은 수능의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수능은 상대평가다. 백분위와 등급으로 학생을 줄 세운다. 옆자리 아이가 함께 못하면 내 아이의 등급은 그대로 유지된다. 성적표의 숫자는 안정돼 보인다. 그러나 등급이 유지되는 동안에도 실제로 읽고 계산하는 힘은 반 전체가 함께 내려앉을 수 있다. 등급은 옆자리와의 거리만 재기 때문에, 반 전체가 같이 내려가면 하락은 등급표에 아예 잡히지 않는다. 등수는 위안을 주지만 능력의 하락을 가려버린다. 페트릴리 회장이 지식은 제로섬이 아니라고 못 박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등급은 남과의 비교에서 나오지만 읽고 따지는 힘은 남과 나누는 몫이 아니라 각자가 온전히 채워야 하는 몫이다. 순위가 지켜졌다는 안도가 가장 위험한 신호일 때가 있다. 내 아이의 등급이 그대로라고 해서 읽기 능력까지 그대로인 것은 아니다. 등급표가 안심을 줄수록 안심 뒤에 가려진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더 물어야 한다.

사회는 더 많은 걸 요구하는데

미국 국립교육경제센터를 이끄는 비키 필립스는 성명에서 시점의 아이러니를 짚었다. "경제와 사회가 젊은 세대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바로 그 순간에, 너무 많은 교육 시스템이 그들이 필요로 할 지식과 역량을 길러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대다수 PISA 참가국이 뚜렷한 후퇴를 겪고 있다는 진단도 함께 내놨다. 한두 나라의 사정이 아니라 참가국 다수가 같은 방향으로 물러섰다는 뜻이다. 후퇴가 넓게 퍼져 있을수록, 한 학교나 한 정책의 실패로 좁혀 설명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만큼 이 흐름은 한 가정이 통제하기 힘든 큰 배경 위에서 벌어진다.

이 대목은 자녀 진로와 곧장 이어진다. AI가 일자리의 모양을 바꾸는 동안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의 기준선은 올라간다. 그런데 기초 학력을 보여주는 지표는 반대 방향으로 내려간다. 요구선은 오르고 성취선은 내리는 두 방향의 어긋남이 문제의 핵심이다. 두 선이 벌어지는 폭이 곧 다음 세대가 감당할 격차다. 사교육비를 아무리 늘려도 늘린 돈이 채점 가능한 문제 풀이에만 쏠린다면 이 간극을 메우기 어렵다. 채점표를 채우는 능력과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역량은 정답을 빨리 찾는 손보다 긴 글을 읽어내고 스스로 따지는 머리에 가깝다. 필립스의 문장에서 무거운 부분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순간과 길러내지 못한다는 진단이 같은 시점에 놓였다는 데 있다. 요구는 커지고 공급은 줄어드는 이 어긋남을 결국 개별 가정이 통째로 떠안게 된다. 떠안는 부담이 커질수록, 무엇에 시간을 쓰게 할지에 대한 가정의 선택이 더 무거워진다. 선택을 뒤로 미룰수록 벌어진 격차는 더 메우기 어려워진다.

자녀의 숙제를 옆에서 본다

바꿀 수 있는 한 가지는 학원을 하나 더 알아보는 일이 아니다. 저녁에 자녀가 숙제하는 자리 옆에 앉아 화면을 지켜보는 일이다. 챗봇이 답을 대신 뱉어내는지, 아니면 아이가 스스로 생각한 뒤 챗봇으로 확인만 하는지 나눠서 본다. 겉보기에 같아 보여도 두 장면은 완전히 다르다. 앞의 장면에서 아이는 결과만 받아 적고 뒤의 장면에서 아이는 생각을 끝낸 뒤 도구를 부린다. 같은 챗봇을 켜 두었어도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정반대다. 부모가 봐야 할 것은 화면에 뜬 답이 아니라 답에 이르는 아이의 과정이다. 과정이 아이 안에서 일어났다면 답이 챗봇에서 나왔어도 배움은 남는다.

AI를 아예 못 쓰게 막는 방법은 현실적이지 않다. 이미 다수의 학생이 쓰고 있다고 자료가 말한다. 막는 대신 쓰는 방식을 바꾸는 편이 현실에 맞는다. 대신 아이에게 화면을 덮고 방금 푼 문제의 풀이를 말로 설명해 보라고 청한다. 설명이 막히면 챗봇이 대신 생각해 준 것이고 설명이 이어지면 도구로 잘 쓴 것이다. 이 짧은 확인 하나가 진도표나 등급표보다 아이의 상태를 정확히 알려준다. 확인의 목적은 아이를 다그치려는 것이 아니라, 도구가 대신해 준 자리를 아이 스스로 채우게 돕는 데 있다. PISA가 재는 힘은 정확히 이 지점에 있다. 긴 지문을 읽고 뜻을 다시 세우는 힘, 그리고 수학적으로 따지는 힘이다. 내신 등급이나 학원 진도표가 아니라 바로 이 힘이 한 세대의 밑바닥을 결정한다. 이번 PISA가 역대 최저로 가리킨 것도 결국 이 밑바닥이다. 성적표의 숫자를 확인하기 전에, 숫자 뒤에서 아이가 실제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한 번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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