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정책
수행평가 30개, 학습이 아니라 행정이 되는 순간
한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가장 많은 날은 7교시 중에 7개가 수행평가인 날도 있어요. 서너 개가 몰리면 두세 시간 자고 학교에 와서 자면서 준비합니다." 청소년 언론이 480여 명을 조사한 결과 학생들은 한 학기에 평균 30개가 넘는 수행평가를...

한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가장 많은 날은 7교시 중에 7개가 수행평가인 날도 있어요. 서너 개가 몰리면 두세 시간 자고 학교에 와서 자면서 준비합니다." 청소년 언론이 480여 명을 조사한 결과 학생들은 한 학기에 평균 30개가 넘는 수행평가를 치르고 있다고 답했다. 응답자 3분의 2는 양이 너무 많다고 했으며 절반 이상은 사교육이나 부모의 도움을 받았다고 답했다. 내신의 40%를 좌우하는 평가가, 학습이 아니라 행정 처리가 되어가고 있다. 이 글은 이 수치를 한국의 중·고등 자녀를 둔 가정의 자리에서 다시 읽으려는 시도다.
과정 평가라는 이름의 결과 평가
수행평가는 원래 주입식 지필고사를 보완하려고 도입됐다. 학습의 과정을 본다는 취지다. 그런데 한 학기 서른 개라는 숫자 앞에서 이 명분은 흔들린다. 과정이 서른 번이면 더 이상 과정이 아니다. 학생 입장에서는 마감일이 서른 번 돌아오는 행정 캘린더이며 학부모 입장에서는 자녀가 잠을 못 자는 이유가 서른 가지로 늘어난 것일 뿐이다.
고1~고3을 둔 가정이라면 이 숫자가 익숙할 것이다. 중간고사가 끝나기 무섭게 자녀의 책상에 발표자료, 보고서 초안, 실험 보고서, 영어 에세이가 쌓인다. 학원에서는 수행 시즌이라 진도 빼기 어렵다는 말이 나오며 부모는 인쇄·자료 검색·아이디어 정리를 어디까지 도와야 할지 매번 망설인다. 내신 40%가 걸려 있다는 무게가 모든 판단의 배경에 깔려 있다.
문제는 이 30개가 균등하게 분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기고사를 피해 특정 시기에 몰리며 같은 주에 서너 과목이 겹친다. 평가가 학습 결과를 들여다보는 창이 아니라 한 시기에 한꺼번에 처리해야 하는 과업 묶음으로 작동하는 순간, 자기주도학습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시간이 없는 학생에게 자기주도란 사치다.
도움의 경계가 무너진 자리
가장 무거운 대목은 따로 있다. 응답자 절반 이상이 사교육이나 부모의 도움을 받았다고 답한 부분이다. 한 고교생 편집장은 "절반 이상이 사교육이나 부모 도움 받아 달달 외워 와서 시험을 칠 거면 수행평가를 운영하는 데 문제가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학생이 직접 던진 이 질문은 학부모에게 더 날카롭게 돌아온다.
가정의 풍경을 떠올려보자. 자녀가 새벽 한 시에 PPT를 띄워놓고 졸고 있다. 발표가 내일이다. 부모는 두 가지 선택지 앞에 선다. 자료 정리를 도와줘서 자녀를 재울 것인가, 아니면 "네가 끝까지 해라"라고 말하고 같이 새벽을 견딜 것인가. 어느 쪽도 교육적으로 깔끔하지 않다. 도와주면 평가의 공정성이 흔들리며 손을 떼면 자녀의 내신이 흔들린다. 이 딜레마는 가정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제도가 가정에 떠넘긴 비용이다.
여기서 한 가지 개념을 세우고 싶다. 위임된 평가. 학교는 평가의 형식을 학생에게 위임하며 학생은 시간 부족 탓에 일부를 부모와 학원에 위임한다. 평가는 위임되는 순간 평가가 아니라 외주 산출물이 된다. 외주 산출물에 매겨진 점수는 학생의 사고력이 아니라 가정의 자원 동원 능력을 측정한다. 사교육비 격차가 학력 격차로 직결되는 통로가 지필고사가 아니라 수행평가일 수 있다는 가설을, 이 데이터는 조심스럽게 가리킨다.
학부모는 이 위임 구조를 "내가 도와주는가, 아닌가"의 윤리 문제로 좁혀서는 안 된다. 이는 너무 작은 질문이다. 더 큰 질문은 이것이다. 내 자녀는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아니면 무엇을 제출하고 있는가. 배움과 제출은 다르다.
대책은 발표됐지만 교실은 그대로다
지난해 교육부는 수업 중에만 수행평가를 실시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외부 도움 의존을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현장의 체감도는 낮다는 보도가 이어진다. 왜 그런가. 한 교사노조 정책연구원장은 "교육청별로 수행평가 비율, 서·논술형 비율, 정기시험 횟수, 실시 시기, 세부 기준 공개 방식까지 강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사는 수업 맥락에 맞는 평가를 설계하기보다 지침이 요구한 형식부터 도식적으로 맞춘다는 것이다.
이 대목은 학부모가 놓치기 쉬운 진실을 담고 있다. 수행평가의 부담은 교사가 만들어낸 게 아니다. 교사도 부담스럽다. 지침과 실제 수업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한, 학생의 부담은 줄지 않는다. 수업 중에만이라는 한 줄이 현장에서 작동하려면 과목 수, 교과별 진도, 교사의 평가 재량, 학교별 자율성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 한 부분만 조이면 다른 곳이 부푼다.
그래서 학부모가 제도가 곧 바뀔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올해와 내년을 보내는 것은 위험하다. 교육부는 학생 기준으로 평가 비율과 일정을 조정하는 방안을 시도교육청과 협의 중이라고 했다. 협의가 결론에 이르는 시점, 매뉴얼이 현장에 내려오는 시점, 다시 교사들이 그 매뉴얼을 수업에 녹이는 시점 사이에는 분명한 시간차가 있다. 그 시간차 안에 지금 중3, 고1, 고2, 고3, 재수생의 한 학기가 통째로 들어 있다.
가정이 다시 그어야 할 선
제도가 그대로라면, 가정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다만 움직임의 방향이 중요하다. 내가 더 많이 도와주겠다가 아니라 무엇이 평가의 본질인가를 자녀와 함께 분별하겠다는 쪽이어야 한다.
수행평가 30개 중에는 분명히 비중이 다른 것들이 섞여 있다. 내신 점수에 직결되는 평가, 학생부 기재로 진학 자료가 되는 평가, 형식적으로 제출만 하면 되는 평가가 한 학기 안에 공존한다. 모든 평가에 같은 에너지를 쓰는 학생은 어떤 평가도 깊게 하지 못한다. 잠을 줄여 모든 것을 다 잘하려는 전략은 입시 관점에서도 비효율적이며 학습 관점에서도 손해다. 평가를 분류하지 못한 채 일정만 따라가는 자녀를 옆에서 보면, 부모가 도와줄 일은 PPT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언어다.
또 하나, 도움의 경계를 가정 안에서 명시적으로 합의해두는 일이다. 자료 검색은 어디까지, 초안 첨삭은 어디까지, 아이디어 발상은 어디까지. 합의가 없으면 매번 새벽의 충동에 따라 도움이 늘어난다. 합의가 있으면 자녀는 자기 결과물에 대한 책임감을 유지한다. 이 책임감이 자기주도성의 뿌리다. 자기주도학습은 학원에서 배우는 기술이 아니라, 자기 산출물의 저자가 자기 자신이라는 감각에서 자란다.
이번 주, 자녀에게 던질 한 질문
이번 주말, 자녀의 일정표를 함께 펴놓고 한 가지만 물어봐도 좋다. "이번 학기 수행평가 중에 네가 진짜 배우고 싶은 거 하나만 골라봐. 나머지는 점수만 챙기자." 이 질문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 30개를 30개로 다루지 않게 만들며 자녀에게 자기 학습에 우선순위를 매길 권한을 돌려준다.
이 질문이 어색하다면 어색함 자체가 신호다. 우리는 그동안 자녀의 평가를 전부 다 잘해야 하는 것으로 다뤄왔을 가능성이 높다. 전부 다 잘하라는 요구는 응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에 가깝다. 판단하지 않은 학생은 자기주도성을 가질 수 없다. 학습 습관은 시간표가 아니라 선택의 누적으로 만들어진다.
덧붙여, 잠 시간을 가정의 협상 불가능한 기준선으로 두는 일도 권할 만하다. 두세 시간 자고 학교에 가서 자면서 다음 수행을 준비하는 사이클은, 단기 점수는 지킬지 몰라도 고2 후반부터 무너지기 쉽다. 입시는 단거리가 아니다.
닫으며
경기도의 한 고2 학생이 새벽에 책상 앞에서 졸고 있다. 일곱 개의 수행평가가 한 주에 몰려 있다. 이 장면을 다시 떠올려본다. 학생의 책상 위에 놓인 것은 과제만이 아니다. 학교가 설계한 평가, 교육청이 강제한 지침, 교육부가 협의 중인 대책, 가정이 동원한 자원, 학원이 제공한 첨삭이 모두 한 장의 책상 위에 겹쳐 있다. 학생 한 명의 잠은, 사실 시스템 전체의 잠이다.
주입식 지필을 보완하려고 도입된 수행평가가 정작 학생의 사고력을 빼앗는 방향으로 굳어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완한 것인가. 그리고 그 보완의 비용을, 우리는 누구의 새벽에 청구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