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독서
수학·영어는 반등했는데, 국어만 7년째 아래로 꺾였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수학·영어는 반등했지만 국어만 7년째 미도달이 늘었다. 김 부센터장은 숏폼과 AI 요약에 길든 읽기 습관을 우려한다. 경인교대 김중훈 부센터장의 진단과 읽는 환경을 바꾸는 방법을 함께 담았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수학과 영어는 코로나19 이후 미도달 비율이 반등하거나 개선됐다. 국어만 다른 길을 갔다. 지난 7년간 중학교와 고등학교 모두에서 국어 미도달이 늘었다. 경인교대 기초학력지원센터 김중훈 부센터장이 EBS 뉴스에서 짚은 흐름이다. EBS 뉴스는 국제평가에서도 한국 학생의 읽기 성적이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전했다. 두 숫자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과목별 성적 그래프에서 국어만 혼자 아래로 꺾이는 중이다. 미도달이 늘수록 기준선을 넘지 못한 학생도 그만큼 많아진다.
성적이 한 해 오르내리는 일은 흔하다. 그러나 한 과목만 7년째 같은 방향으로 밀려 내려가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잠깐의 부진이 아니라 흐름이 굳어졌다는 신호에 가깝다. 다른 과목이 제자리를 찾는 동안 국어만 그러지 못했다는 사실은, 문제의 뿌리가 국어 과목 안에만 있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국내 시험과 국제 시험이 나란히 국어와 읽기를 가리키는 상황에서, 원인을 학생 개개인의 노력 부족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이 문제는 개인의 노력을 넘어, 무엇을 어떻게 읽게 하느냐의 문제로 이어진다. 김중훈 부센터장의 진단을 따라 무엇이 무너졌고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차례로 짚는다.
국어만 아래로 꺾인 그래프
성적표를 과목별로 뜯어보면 국어의 자리가 유독 눈에 띈다. 김중훈 부센터장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국어 교과의 미도달이 코로나19 이후에도 줄지 않고 늘었다고 설명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똑같이 나타난 현상이다. 수학과 영어는 같은 기간 반등하거나 개선됐다. 회복의 흐름에서 국어만 빠졌다는 점이 이 그래프의 핵심이다. 국어만 반대로 움직였고 김 부센터장이 지난 7년을 추적한 결과가 같은 방향으로 모인다. 한두 해의 흔들림이 아니라 방향이 정해진 추세다.
국제평가의 신호도 겹친다. EBS 뉴스가 전한 대로 한국 학생의 읽기 성적은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내 성취도와 국제 성취도가 동시에 국어와 읽기를 지목하는 셈이다. 우연으로 넘기기 어려운 일치다. 서로 다른 시험이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면, 특정 문제집이나 특정 학교의 사정이 아니라 학생 전반의 읽기 습관이 흔들린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신호가 하나였다면 예외로 넘길 수 있지만 둘이 겹치면 흐름으로 읽어야 한다.
수능을 준비하는 입장에서 무게가 다르게 다가온다. 국어 비문학 지문 하나에는 여러 단락의 논리가 층층이 겹쳐 있다. 지문을 끝까지 따라가지 못하면 문제는 손도 대기 어렵다. 수학 공식이나 영어 단어처럼 따로 외워 빈칸을 메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국어 미도달이 늘어난다는 말은, 지문을 읽고 뜻을 붙잡는 힘 자체가 얇아진다는 뜻에 가깝다. 그래서 국어는 벼락치기로 점수를 끌어올리기 가장 어려운 영역이 된다. 읽어 내는 힘은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 만큼, 무너질 때도 서서히 무너진다.
훑어보기가 지운 행간
숏폼과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눈은 화면을 빠르게 훑는다. 김중훈 부센터장은 시각 정보를 빠르게 훑어보는 습관이 글의 논리 전개와 행간의 맥락을 잡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고 봤다. 긴 글은 앞 문장이 뒤 문장의 조건이 되고 한 단락이 다음 단락의 근거로 이어진다. 훑는 눈은 이 연결 고리를 건너뛴다. 낱낱의 문장은 분명 읽었는데 글 전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잡히지 않는 상태가 여기서 온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놓인 논리를 읽어 내는 일이 곧 독해인데, 훑는 읽기는 문장 사이의 논리를 곧장 지운다.
스마트폰은 사정을 더 어렵게 만든다. 앱과 알림이 끊임없이 주의를 잘라 간다. 방금 읽은 문장을 머릿속에서 곱씹어 장기기억으로 옮길 틈이 없다. 그래서 돌아서면 방금 본 내용조차 흐려진다. 김 부센터장은 파편화된 디지털 정보를 즉각적인 자극만 주는 패스트푸드에 빗댔다. 배는 부른데 남는 것이 없는 상태다. 많은 정보를 접했다는 감각과 실제로 이해해 남긴 양이 어긋나는 것이다. 자극은 강한데 소화가 없으니, 곱씹어 오래 남기는 읽기와는 정반대 방향인 셈이다.
공부로 옮기면 손해가 선명해진다. 내신 서술형은 지문을 읽고 근거를 찾아 문장으로 엮는 과제다. 훑는 습관으로는 근거의 위치부터 놓친다. 자기주도 학습을 하겠다며 인터넷 강의 요약본만 빠르게 넘기는 방식도 같은 함정에 빠진다. 진도는 나가는데 행간은 비어 있다. 요약본은 남이 이미 이해해 정리한 결과일 뿐, 이해하는 과정 자체를 대신해 주지는 못한다. 시험장에서 요구되는 것은 훑어 본 분량이 아니라 한 지문을 끝까지 붙잡아 낸 경험이다.
요약을 맡길 때 건너뛰는 것
긴 글을 직접 읽는 대신 생성형 AI에 요약을 맡기는 학생이 늘었다. 글쓰기까지 AI에 넘기는 경우도 많아졌다. 편해진 만큼 조용히 사라지는 과정이 있다. 편의를 곧 학습으로 착각하기 쉬운 지점이다. 무엇을 얻었는지는 곧바로 눈에 보이지만 무엇을 잃었는지는 한참 뒤에야 드러난다.
김중훈 부센터장은 사람의 뇌가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오류를 교정하는 능동적 몰입 속에서 비판적 사고를 기른다고 설명했다. 글을 읽고 쓰는 일이 바로 능동적 몰입이다. 문장을 읽으며 다음 내용을 예측하고 예측이 빗나가면 앞으로 돌아가 고쳐 읽는다. 쓰기는 흩어진 생각을 한 줄로 세우며 빈틈을 드러낸다. 김 부센터장은 읽고 쓰기야말로 비판적 사고를 촉진하는 가장 핵심적인 활동 중 하나라고 못 박았다. 예측하고 빗나가고 되짚는 이 과정이 생략되면, 사고를 벼리는 마찰도 함께 사라진다. 마찰이 없는 공부는 편하지만 손에 남는 것도 그만큼 적다.
요약과 작성을 통째로 AI에 외주화하면 훈련 과정 자체를 건너뛴다. 결과물은 그럴듯하지만 가설을 세우고 틀리고 고치는 근육은 붙지 않는다. 문제집 해설부터 펼쳐 답을 옮겨 적을 때와 비슷하다. 채점란은 채워지는데 실력은 제자리다. AI 요약본으로 지문을 대신 읽은 학생은 시험장에서 낯선 지문을 만나는 순간 흔들린다. 대신 읽어 준 도구는 시험장까지 따라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쓰기를 AI에 넘길 때 손해가 특히 크다. 머릿속 생각은 늘 뒤엉켜 있고 문장으로 옮기는 순간 논리의 구멍이 드러난다. 스스로 문장을 세워 본 학생은 구멍을 메우며 생각을 정돈한다. AI가 매끈한 글을 대신 써 주면 구멍은 보이지 않은 채 남는다. 논술과 수행평가에서 자기 생각을 요구받을 때, 대신 써 준 글은 아무 힘이 되지 못한다. 매끄러운 문장을 얻는 대신 생각을 벼릴 기회를 내주는 거래인 셈이다. 논리의 구멍을 스스로 마주해 본 경험이 곧 실력의 밑천이 된다.
AI를 잘 쓰는 학생의 조건
AI를 멀리하라는 결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김중훈 부센터장의 진단은 오히려 반대편을 가리킨다. AI 시대일수록 책을 깊이 읽고 스스로 쓰는 학생이 인공지능을 더 창의적이고 생산적으로 다룬다는 것이다. 역설처럼 들리지만 이유는 단순하다. 도구를 잘 다루는 힘이 도구 바깥, 곧 사람의 읽는 힘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AI가 내놓은 답을 쓸 만한 재료로 바꾸려면, 답이 맞는지 틀렸는지 가려낼 눈이 있어야 한다. 요약이 원문의 핵심을 놓쳤는지, 문장이 논리를 건너뛰었는지 알아채는 힘은 스스로 읽고 써 본 사람에게서 나온다. 읽는 근육이 없는 학생은 AI가 틀린 답을 줘도 그대로 받아 적는다. 도구가 좋아질수록 도구를 검증할 사람의 안목이 더 중요해지는 구조다. AI를 잘 쓰는 능력과 스스로 읽고 쓰는 능력은 따로 있는 힘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진 힘이다.
공부 도구로서 AI의 값어치도 여기서 갈린다. 같은 챗봇을 놓고도 누구는 개념을 되묻고 반례를 요구하며 이해를 넓히지만 누구는 답만 복사해 과제 칸을 채우는 데 그친다. 지문을 끝까지 읽어 본 학생일수록 앞쪽에 가깝다. 같은 도구를 쥐어 줘도 결과가 갈리는 이유는 도구가 아니라 도구를 쓰는 사람의 읽는 힘이다. AI는 읽는 힘을 대신해 주지 못한다. 읽는 힘 위에 올라섰을 때 비로소 도구가 된다. 대학에 들어가면 강의 자료와 논문 요약을 AI에 맡길 일이 더 늘어난다. 요약이 원문을 왜곡했는지 가려내는 검증하는 눈 역시 스스로 읽어 온 시간에서 자란다. 읽기를 미뤄 둔 학생은 격차를 대학에서 더 크게 마주한다.
해득에서 독해까지, 어디서 막혔나
문해력은 한 덩어리가 아니다. 김중훈 부센터장은 문해력이 한글 해득, 읽기 유창성, 독해력으로 이어지는 단계를 밟아 발달한다고 설명했다. 글자를 소리로 바꾸는 단계, 막힘없이 읽어 내는 단계, 뜻을 붙잡는 단계가 차례로 쌓인다. 아래 계단이 부실하면 위 계단도 흔들린다. 그래서 어느 단계에서 걸렸는지에 따라 필요한 처방이 달라진다. 어느 계단이 무너졌는지 모른 채 문제만 더 푸는 방식으로는 다음 계단으로 올라서기 어렵다.
정작 어려운 일은 걸린 지점을 찾아내는 작업이다. 김 부센터장은 학교에도 진단 도구가 있지만 부족하다고 봤다. 어려움의 본질을 일찍 발견하려면 발달 단계에 최적화된 촘촘한 진단과 체계적인 읽기 자료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문제를 정확히 짚지 못하면 노력의 방향도 어긋나기 쉽다. 진단이 늦어질수록 잘못된 자리에 쏟는 시간도 함께 늘어난다. 처방보다 진단이 앞서야 한다는 원칙은 공부에도 그대로 통한다.
학생 스스로에게도 쓸모 있는 관점이다. 국어 성적이 안 나온다는 뭉뚱그린 판단은 대책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지문을 소리 내어 읽을 때 자주 더듬는지, 유창하게 읽는데도 뜻을 못 잡는지 나눠 봐야 한다. 앞이 문제라면 읽는 양과 소리 내어 읽기가 급하다. 뒤가 문제라면 배경지식과 어휘가 우선이다. 시간 관리도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 국어에 몇 시간을 붓느냐보다 어느 단계에 시간을 쓰느냐가 성적을 가른다. 막힌 계단을 건너뛴 채 시간만 늘리면 노력은 헛돈다. 자신의 약점을 단계로 나눠 보는 습관만으로도 이미 절반의 처방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진단은 뒤로 밀리기 쉽다. 고등학생이 되어 한글 해득이나 읽기 유창성을 점검하자는 말은 어색하게 들린다. 그런데 독해가 안 된다고 느끼지만 실은 유창성 단계에서 이미 삐끗한 경우도 있다. 늦었다고 건너뛰기보다 자기가 어느 계단에서 멈췄는지부터 확인하는 편이 빠른 길이다. 계단을 되짚는 일이 돌아가는 길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다. 자신이 어느 계단에 서 있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다음 한 걸음의 방향이 분명해진다.
한 지문을 소리 내어 읽는 습관
김중훈 부센터장은 초등학교 수업에서 묵독보다 소리 내어 읽는 시간을 늘리라고 권했다. 그렇게 하면 읽는 수준이 낮은 학생도 함께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리 내어 읽기는 준비물도 비용도 들지 않는다. 학급 단위로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고 그림으로 옮기고 연극으로 풀어내는 활동도 권했다. 국어 시간에 갇히지 않고 여러 교과의 주제를 텍스트로 읽어 내는 연습이다. 읽기를 특정 과목의 숙제가 아니라 모든 공부의 바탕으로 놓자는 제안이다.
가정 쪽 조건으로는 네 가지가 꼽힌다. 어른이 앞장서 책 읽는 모습을 보인다. 책의 주제를 놓고 아이와 대화한다. 여기에 소리 내어 읽어 주기, 손 닿는 곳마다 좋은 책 두기가 더해진다. 김 부센터장은 이 가운데 아이 손이 닿는 곳마다 양질의 책을 채워 주는 것을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김 부센터장은 거실을 서재로, 교실을 도서관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읽는 힘은 의지가 아니라 환경에서 자란다는 이야기다. 매일 읽으라는 잔소리보다 자연히 책에 손이 가는 자리를 만드는 편이 오래간다. 네 가지 모두 특별한 비용이나 재능이 아니라 하루의 작은 배치에서 시작된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김 부센터장의 권고는 초등 수업을 향한 것이지만, 이 칼럼의 해석으로는 수능과 내신을 준비하는 학생의 자기 점검에도 응용할 수 있다. 국어 지문이나 비문학 한 편을 골라 눈으로만 훑던 방식 대신 소리 내어 끝까지 읽는다. 막히는 문장에서 속도가 뚝 떨어진다면 정확히 거기가 이해가 무너진 지점이다. 막히는 자리를 표시해 두면 스스로 진단한 약점 목록이 된다. AI에 요약을 맡기면 끝내 만나지 못하는 신호다. 하루 한 지문이면 족하다. 거창한 계획보다 매일 반복할 수 있는 작은 습관이 읽는 힘을 바꾼다. 읽는 근육은 그렇게 매일 한 편씩 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