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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교육

스크린 시대의 퍼포먼스 불안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가 만들어낸 '빅 에브리원' 감시 구조 속에서 무대공포증이 일상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공공장소에서 단순히 존재하는 것조차 퍼포먼스가 된 시대, 프로프라놀롤 처방 급증이 드러내는 집단적 자의식의 고조와 연결 기술의 역설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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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시대의 퍼포먼스 불안

2024년 골든글로브 시상식,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수상 소감을 시작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베타 차단제를 복용했으니 오늘 밤은 수월할 것 같습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발언은 미국에서 조용히 확산 중인 현상의 단면이다.

프로프라놀롤(propranolol)은 1960년대부터 심장 부정맥과 고혈압 치료에 쓰여온 약물이다. 최근 몇 년간 처방 건수가 급증하고 있는데, 이 약물이 심박수를 안정시키는 동시에 무대 공포증의 신체 증상—식은땀, 속 울렁거림, 빠른 맥박—을 완화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People 매거진은 지난해 물었다. "왜 갑자기 모두가 수십 년 된 이 진정제를 복용하고 있는가?"

무대 밖에서 자라는 무대 공포증

The Atlantic의 메건 가버(Megan Garber)는 신간 Screen People: How We Entertained Ourselves Into a State of Emergency에서 이 물음에 하나의 답을 제시한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가 무대 공포증을 무대 위로만 가두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사실상 소형 이동식 방송 스튜디오다. 그것을 손에 쥔 모든 사람은 촬영감독이자 감독이자 프로듀서이자 배급자가 된다. 동시에—그것을 쥐지 않은 모든 사람도—언제든 타인의 렌즈에 포착될 수 있는 잠재적 출연자가 된다. 공원에서 산책하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든, 지하철에 앉아 있든, 그 장면이 편집되어 수백만 명의 피드에 올라갈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다.

빅 에브리원의 감시

가버는 조지 오웰의 1984를 경유해 이 구조를 짚는다. 오웰이 묘사한 텔레스크린은 오락과 감시의 포털이자 누가 언제 당신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장치였다. 오늘날의 스마트폰은 그 논리를 반복하되, 감시 주체를 빅 브라더에서 "빅 에브리원(Big Everyone)"으로 대체한다.

이 변화가 만들어내는 취약성은 구체적이다. 맥락에서 이탈될 수 있고, 타인의 내러티브에서 주인공 대신 엑스트라나 조연, 혹은 소도구로 등장할 수 있다. 영웅으로 편집될 수도 있고, 악당이나 농담의 소재가 될 수도 있다. 이 불확실성이 공공장소에서 단순히 존재하는 행위에 새로운 긴장감을 부여한다.

삶을 연기하는 것과 사는 것의 경계

소셜 미디어의 개인 방송 기능은 본래 연결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됐다. 가버의 분석은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이 기능이 직접적 인간 상호작용과 그 사이에 일종의 스크림(scrim)—반투명 막—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사람들은 단지 서로 교류하는 인간이 아니다. 잠재적 비평가들로 구성된 관중을 상대하는 배우이기도 하다.

가버의 표현을 빌리면, 현대인은 동시에 두 가지로 존재한다. "인간이자 오브젝트, 3차원 몸이자 2차원 이미지, 주체(who)이자 대상(what)." 요리나 하이킹 같은 사적 행위조차 "어떻게 보일 것인가"라는 관중 지향적 시선과 결합되면서, 삶을 연기하는 것과 실제로 사는 것 사이의 경계가 침식된다.

마케팅이 포착한 신호

패션 브랜드 H&M은 수년 전 "매일의 주인공이 되라"는 광고 캠페인을 선보였다. 메인 캐릭터라는 개념을 전면에 내세운 이 캠페인은 단순한 마케팅 언어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내러티브의 주인공으로 인식하는 방식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일상의 문법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문제는 이 퍼포먼스 경제가 대규모 사회 현상이 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집단적 자의식이 고조되면서, 공공장소에서의 존재 자체가 일종의 퍼포먼스가 된다. 프로프라놀롤 처방 증가는 이 현상의 생물학적 지표다. 약물은 개인의 신경계를 진정시킬 수 있다. 그러나 대중적 자의식이 일상의 구조로 굳어지는 사회적 동학 자체를 되돌리지는 못한다.

연결이 만든 거리

가버의 논지는 역설을 중심에 놓는다. 연결을 약속한 기술이 거리를 만들었다. 스마트폰이 구축한 퍼포먼스 문화는 진정한 상호작용의 공간을 좁히고, 연출된 자아와 관중 사이의 관계를 확장한다. 무대 공포증이 더 이상 무대 위 퍼포머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퍼포먼스 불안이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면, 대응의 방향도 개인 차원의 증상 관리를 넘어서야 한다. 어떤 사회가 모든 구성원에게 상시 퍼포먼스를 요구하는지—그 구조적 조건을 묻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출처: The Atlantic - The New Age of Performance Anx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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