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독서
진도는 팔리고 용기는 측정되지 않는다: 영어 학원이 속도를 파는 이유
영어 학원은 왜 진도를 파는가. 한승훈 원장의 칼럼을 통해 측정되는 진도와 측정되지 않는 용기의 구조를 분석한다.

학부모 상담실에서 가장 자주 오가는 질문은 "왜 오래 배웠는데 자신감이 없느냐"이고, 이때 많은 부모는 더 높은 레벨로 옮겨야 하는지를 먼저 고민한다고 원장은 썼다. 아발론랭콘 동대문 전농캠퍼스 한승훈 원장이 조선에듀 칼럼에서 짚은 이 장면은 한국 영어 사교육의 한 단면을 압축해 보여준다. 문제는 자신감인데 해법은 진도다. 원장의 진단은 반대다. 아이에게 부족한 것은 진도가 아니라 영어를 자기 언어로 써 본 경험이고, 그 경험이 만드는 용기라는 것이다.
이 칼럼을 한 학원장의 소회로 읽고 넘기기는 아깝다. 현장 경험에서 나온 논증이지만, 그 안에는 진도 중심 학습이 왜 자신감으로 바뀌지 않는지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고, 그 설명을 구조적으로 읽으면 학원 운영과 학부모 상담의 지표 자체를 되묻게 된다.
진도는 측정되고 용기는 측정되지 않는다
구조적으로 보면 학원이 진도를 앞세우는 이유는 단순하다. 진도는 보인다. 교재가 몇 권째인지, 레벨이 몇 단계인지, 단어 시험에서 몇 개를 틀렸는지는 상담 테이블 위에 숫자로 올라온다. 반면 원장이 말하는 '용기'는 어느 표에도 기록되지 않는다. 원장은 많은 부모가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면 가장 먼저 점수와 진도를 묻는다고 썼다. 이 칼럼의 해석으로는, 그것이 부모의 조급함이라기보다 그것 말고는 물어볼 수 있는 지표가 마땅치 않다는 사정에 가깝다.
원장의 표현을 빌리면 영어는 암기 과목이 아니라 누적 과목이다. 단어를 많이 외우고 문법을 빨리 끝낸다고 실력이 완성되지 않고, 배운 표현을 말해 보고 틀리고 다시 시도하는 작은 성공이 쌓일 때 비로소 시험 과목이 언어가 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실증 연구가 아니라 현장 경험에서 나온 논증이며, 그렇게 읽어야 한다. 그러나 그 경험이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이 칼럼의 논리대로라면, 상담이 측정 가능한 진도에만 쏠릴 때 '용기' 같은 경험은 후순위가 되기 쉽다.
기초를 건너뛴 속도가 중학교에서 흔들리는 이유
칼럼이 든 사례는 중학교 1학년에 기초가 거의 없는 상태로 들어온 학생이다. 학원은 진도를 앞당기지 않고 학교 시험 범위를 완벽히 이해하는 데 집중했고, 이해할 때까지 반복해 설명했다. 원장에 따르면 점수보다 먼저 달라진 것은 표정이었고, 자기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그 학생은 중학교 3학년에 처음으로 영어 시험 100점을 받았다.
원장은 이 결과보다 과정에 방점을 찍는다. 성적이 자신감을 만든 것이 아니라 작은 성공 경험이 자신감을 만들었고, 그 자신감이 성적을 바꿨다는 순서다. 한 명의 사례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 잘 따라가던 학생이 중학교에서 갑자기 영어를 어려워하는 현상에 대한 원장의 설명, 곧 지식은 배웠지만 자기 것으로 만들 시간이 부족했다는 진단은 설득력이 있다. 기초가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진도만 앞서가면 학습이 버거워지고 자신감이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것이 원장의 관찰이다.
칼럼의 핵심 논점. 자신감은 칭찬이 아니라 스스로 해냈다는 반복 경험에서 생긴다(원장이 인용한 반두라의 자기효능감). 그래서 원장의 학원이 매년 여는 스피치 콘테스트는 잘하는 학생을 뽑는 행사가 아니라, 어려워하는 학생에게 "나도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말할 수 있다"는 경험을 주는 장치다.
학원의 상품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여기서 학원 운영의 질문이 나온다. 진도를 앞세우는 학원과 경험을 앞세우는 학원은 상담 대화부터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는 다음 레벨로의 이동을, 후자는 수업 중 처음 손을 들고 질문한 경험을 상담에서 다루게 된다. 이 칼럼의 해석으로는 후자가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덜 중요해서가 아니라 기록하고 전달하는 형식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원장이 콘테스트의 목적을 영어를 어려워하는 아이에게 발표 성공 경험을 주는 데 둔다고 밝힌 것은, 측정되지 않던 것을 하나의 장면으로 만들어 보이게 한 셈이다. 발표 직전 울음을 터뜨리던 아이가 무대에서 내려온 뒤 완전히 달라진 표정을 보인다는 원장의 묘사는 그 장면의 힘을 말해 준다.
원장의 관찰에 따르면 초등학교 때 발표 경험을 꾸준히 쌓은 학생은 중학교의 영어 발표와 토론을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영어를 평가받는 과목이 아니라 소통하는 도구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 관찰이 맞다면, 학원이 설계해야 할 것은 레벨 체계의 정교함보다 실패해도 되는 무대의 빈도라는 결론이 따라온다.
부모의 질문이 지표를 바꾼다
칼럼의 마지막 제안은 소박하지만 구조적이다. "오늘 단어 시험 몇 개 틀렸니?" 대신 "오늘 영어로 용기 낸 순간이 있었니?"를 물어보자는 것이다. 원장은 점수와 진도를 묻는 질문도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 그것만 반복되면 아이는 영어를 결과로 평가받는 과목으로만 받아들이게 된다고 썼다. 결과보다 과정을, 속도보다 성장을 인정받는 아이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장의 관찰이다. 이 제안이 구조적인 이유는, 부모의 질문이 곧 아이가 인식하는 평가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학원이 상담에서 무엇을 보고하느냐와 부모가 집에서 무엇을 묻느냐는 같은 지표를 공유한다.
원장은 학원의 목표가 대학입시에 필요한 영어 실력을 탄탄히 키우는 것이라고 명시하면서, 동시에 영어를 평생의 언어로 만드는 것이 궁극의 목표라고 썼다. 이 칼럼의 독법으로는 진도와 용기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순서의 문제다. 기초와 성공 경험 위에 진도를 얹는 학원과, 진도 위에 자신감을 나중에 얹으려는 학원은 같은 교재를 써도 다른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속도는 상담실에서 확인되고, 방향은 아이의 표정에서 확인된다. 이 칼럼의 논리대로라면, 학원과 부모가 무엇을 지표로 삼는지가 아이가 영어를 언어로 경험할지 시험 과목으로만 경험할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출처: 조선에듀 — [영어 교육, 현장 전문가의 시선] 속도에 집착하면 방향을 잃는다 (한승훈 아발론랭콘 동대문 전농캠퍼스 원장, 2026-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