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수업
인문학은 왜 변호받아야 하는가 — 학과장들의 비관, 그리고 글쓰기의 자리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 보고서가 전하는 인문학 학과장 30 명의 비관. 등록 감소, 학부모의 회의, 작은 강의실의 가치, AI 가 흔드는 글쓰기 평가까지 한국 독자의 시선으로 읽는다.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가 의뢰하고 비영리 컨설팅 단체 Ithaka S+R 이 수행한 새 보고서가 미국 대학 인문학 학과장 30 명의 목소리를 모았다. 결론은 짧다. 학과장들은 자신이 이끄는 학과의 미래에 대해 대체로 비관했다. 정치적 간섭, 등록 감소, 학생들의 회의, 그리고 학부모의 부정적 인식이 한꺼번에 밀려든다고 했다. 누군가는 자신의 학과가 '박해받고 있다'고 표현했고, 다른 이는 '내 전문성에 대한 존중은 어디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이 풍경은 미국만의 것이 아니다. 영어와 글쓰기, 문학과 역사라는 영역이 시험과 취업의 도구로만 측정되는 압력은 한국에서도 익숙하다.
'필요악'이라는 말이 학과를 부를 때
보고서에서 가장 무거운 문장 하나는 학과장들이 기관 지도부로부터 어떻게 인식되는가에 대한 진술이다. 인문학 학과는 종종 '필요악' 혹은 '말썽꾼' 으로 불린다. 어떤 학과장은 자신의 학과를 '박해받는다'고까지 묘사했다. 이 단어들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라 한 조직 안에서 인문학이 어떤 좌표에 놓여 있는지 보여준다. 있어야 하지만 환영받지는 않는 자리. 평가표는 있지만 그 평가표가 자신들의 가치를 담아내지 못한다고 느끼는 자리.
이 감각은 대학 바깥에서도 작동한다. 어떤 직무의 가치가 '없애기는 어렵지만 키울 이유도 모르겠다'는 시선 아래 놓일 때, 그 안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을 끊임없이 변호해야 한다. 변호의 피로는 일의 피로보다 무겁다. 학과장들이 비관적이라는 말은, 일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라 일을 설명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뜻에 가깝다.
학부모가 운반하는 회의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수치 하나. 학과장의 3 분의 1 이 학부모가 반(反)인문학 정서를 주도한다고 응답했다. 학생이 인문학을 의심하기 전에, 학부모가 먼저 의심한다는 진술이다. 등록 감소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연방 교육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의 인문학 학사 학위 수여 수는 2010-2015 년 약 24 만 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감소해 왔다.
한국 독자에게 이 대목은 익숙하게 읽힌다. 어떤 전공이 '쓸모 있느냐'를 판정하는 첫 번째 법정은 종종 식탁이다. 진로 상담사보다, 학교 교사보다, 가까운 어른이 먼저 어떤 길은 '안전한 길', 어떤 길은 '낭만적인 길'이라는 라벨을 붙인다.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 보고서는 인문학을 주전공으로 택한 학생이 다른 어떤 주전공 학생보다 두 번째 전공으로도 인문학을 택할 확률이 높다고 전한다. 한 번 안으로 들어온 학생은 이중으로 들어온다. 바깥에서 보이는 회의와 안에서 경험되는 가치 사이의 거리는 그만큼 멀다.
작은 강의실이라는 자산
학과장들은 인문학의 강점으로 작은 규모의 수업을 반복해서 꼽았다. 한 학과장은 그것을 '인간적 척도의 수업(humane scale of classes)' 이라고 불렀다. 또 다른 학과장은 학생들이 자주 이렇게 말한다고 전했다. 인문학 수업이 자신이 쓴 글에 대해 '상세한 피드백' 을 받아본 첫 경험이라고. 영어과 학과장 한 명은 이 인간적 척도의 '비효율적' 교수법이 사실은 '실제 지식과 자기이해, 시민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데 놀랍도록 효율적' 이라고 항변했다.
이 항변이 항변이라는 사실 자체가 시사적이다. 학생 한 명의 문장을 한 줄 한 줄 읽고 여백에 코멘트를 남기는 일은, 외부에서 보면 비용이다. 안에서 보면 그 코멘트의 무게가 한 사람의 사고 방식을 바꾼다. 측정 가능한 산출과 측정되지 않는 효과 사이의 간극이 인문학을 둘러싼 갈등의 본질에 가깝다. 한 사람의 글에 한 사람이 응답한 흔적, 그 흔적이 남긴 변화는 영수증으로 출력되지 않는다.
정성 평가와 정량 평가 사이
보고서는 학과장의 미래 전망이 누구의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 갈린다는 흥미로운 대조를 보여준다. 인문학 배경을 가진 학장의 지지를 받으며 외부 리뷰, 강의 평가, 연구 생산성, 학교의 미션 부합도 같은 정성 지표로 평가받는 학과장 8 명은 학과의 미래에 더 낙관적이었다. 반대로 비용과 효율 중심의 정량 지표로 평가받는 학과장들은 그 지표가 자신들의 학과가 만들어내는 가치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고 느꼈다.
이 대조는 교실 바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떤 일이 어떤 자(尺)로 측정되느냐는 그 일이 살아남느냐를 결정한다. 같은 노동, 같은 시간을 두고도 효율 지표만 들이대면 '낭비' 가 되고, 다른 결의 가치를 보는 눈으로 보면 '두꺼운 일' 이 된다. 평가의 도구가 그 일의 운명을 미리 정한다는 사실은, 인문학 학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AI 가 흔드는 글쓰기의 신뢰
보고서는 영어·인문 수업의 강점이 글쓰기에 대한 상세한 피드백이라는 점과 동시에, AI 가 글쓰기 교육에 만들어내는 긴장도 다룬다. 한 학생이 학기 내내 처음으로 자신의 글에 진지한 답장을 받았다고 느낀 그 수업이, 동시에 'AI 가 썼느냐 학생이 썼느냐' 라는 질문 앞에 흔들린다. 피드백을 줄 대상이 누구의 글인지부터 합의되지 않는 상황은 교사와 학생 양쪽에 깊은 피로를 남긴다.
이 긴장은 도구의 문제 이전에 신뢰의 문제다. 글이라는 매체는 본래 한 사람의 사고 흔적을 다른 사람이 읽는 신뢰 위에 서 있다. 그 신뢰가 흔들리면 평가 방식이 바뀌고, 평가 방식이 바뀌면 가르치는 방식이 바뀌고, 결국 글쓰기라는 활동 자체의 의미가 재배치된다. 인문학 학과장들의 비관에는 학과 외부의 압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학과의 핵심 도구 — 한 사람의 글에 한 사람이 응답하는 작업 — 가 흔들린다는 내부의 동요도 섞여 있다.
그래도 인문학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
보고서가 그리는 그림은 어둡지만, 그 안에는 작은 신호도 있다. 인문학을 주전공으로 택한 학생들은 다른 어떤 분야 학생들보다 두 번째 전공으로도 인문학을 택할 가능성이 높았다. 한 번 깊이 들어가본 학생은 그 깊이를 떠나지 않는다. 작은 강의실에서 자기 글에 처음으로 진지한 답을 받아본 경험, 그 경험은 통계로는 미약해 보여도 한 사람의 안에서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이 신호는 인문학을 '구해야 할 대상' 으로 보는 시선과 다른 결을 제안한다. 인문학은 캠페인으로 구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문장을 끝까지 읽고, 그 문장에 대해 빈말이 아닌 답을 돌려주는 작은 장면들로 유지된다. 학과장들이 비관적이라는 보고서가 동시에 작은 강의실의 가치를 반복해서 인용한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읽고 난 뒤 바뀔 수 있는 한 가지
이 보고서를 덮은 뒤 바꿔볼 수 있는 한 가지는 의외로 작다. 어떤 분야의 가치를 평가할 때, 그것이 어떤 자로 측정되고 있는지부터 한 번 묻는 습관이다. 학과의 미래, 한 직무의 미래, 한 활동의 미래에 대해 '그건 비효율적이다' 라는 판정을 들었을 때, 그 판정이 어떤 지표 위에서 내려졌는지를 짚어보는 것이다.
비용과 효율의 자로만 잰 결론은 한 가지 답만 내놓는다. 외부 리뷰, 강의 평가, 미션 부합도 같은 다른 결의 자를 함께 들이대면 같은 활동이 전혀 다른 무게를 갖는다. 인문학 학과장들이 비관에 빠진 이유 중 큰 하나가 '자기 일을 제대로 잴 자' 를 빼앗긴 것이라는 사실은, 인문학 바깥에서 어떤 일을 하든 한 번쯤 멈춰 세워볼 만한 질문이다. 지금 내가, 또는 내 곁의 누군가가 평가받고 있는 자는, 그 일의 진짜 가치를 담을 만큼 두꺼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