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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수업

하버드의 A학점 상한제는 학업 기준을 회복하지 못한다

하버드의 A학점 20퍼센트 상한제는 성적 인플레이션의 외형만 줄일 뿐 학업 기준을 회복하지 못한다. 상대적 할당이 아닌 숙달 기준, 그리고 AI 시대 평가 신뢰의 문제를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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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의 A학점 상한제는 학업 기준을 회복하지 못한다

하버드가 A학점의 비율을 20퍼센트로 제한하기로 했다. 학내 표창과 우등 자격은 평균 백분위 순위로 가린다. 성적이 수십 년간 위로 밀려 올라간 현실, 특히 명문 대학에서 두드러진 성적 인플레이션을 손보려는 조치다. 텍사스 A&M 대학교 코퍼스크리스티의 의사결정학 교수 모한 라오는 이 상한제가 성적의 외형만 줄일 뿐 학업 기준 자체를 되살리지는 못한다고 본다.

비율을 깎아도 엄정함은 오지 않는다

할당제는 통계상 A의 개수를 줄인다. 그러나 줄어든 숫자가 곧 강의의 엄정함이나 학습의 깊이를 뜻하지는 않는다. 라오의 지적은 단순한 숫자놀음을 겨눈다. 상한선은 성적의 분포를 손보는 행정적 장치이지, 학생이 무엇을 익혔는지를 다루는 장치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평가의 좌표가 옮겨간다는 데 있다. 정해진 숙달 기준에 비추어 한 사람의 성취를 재던 방식이, 같은 강의실의 동급생들과 견주어 등수를 매기는 방식으로 바뀐다. 무엇을 할 줄 알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이, 옆자리보다 잘했는가라는 질문에 자리를 내준다. 외형을 다듬는 사이 평가가 묻는 것 자체가 달라진다.

동급생과 견주는 성적의 함정

하버드의 정책에 항의하는 학생들은 이 변화를 정확히 읽었다. 어느 해 유난히 강한 학급이 상한선을 넘어서면, 최고점을 정당하게 받을 만한 일부 학생도 더 낮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 같은 실력으로 같은 결과물을 냈어도, 그해 강의실에 누가 함께 앉았느냐에 따라 성적표가 갈린다. 학생들이 이를 불공정하다고 본 것은 옳다.

한 사람의 성적은 그가 무엇을 보여주었는지를 담아야 한다. 특정 학기 동급생들의 성과 분포가 그 사람의 학습 증거를 덮어쓰는 구조는 평가의 신뢰를 깎는다. 우등과 표창을 백분위 순위로 가리기 시작하면, 경쟁의 좌표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잘 배웠는지보다 누구를 앞질렀는지가 기록으로 남는다.

AI가 벌려놓는 성취와 이해의 거리

생성형 AI는 이 문제를 더 키운다. 학생이 AI 도구로 과제물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되 그만큼의 이해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성적은 실제 학습을 가리키는 더 약한 지표가 된다. 결과물은 좋아지는데 머릿속 변화는 그에 못 미친다. 그 간극 위에서 매겨진 점수는 무엇을 배웠는지를 갈수록 흐릿하게 보여준다.

버클리의 한 연구자는 'AI 노출도가 높은' 전공에서 성적 인플레이션이 한층 가팔랐다고 짚었다. 최고점의 상승은 학생들이 집에서 글쓰기 과제를 수행할 때 가장 두드러졌다. 채점하는 쪽이 보는 것은 점점 더 매끄러운 결과물인데, 그 결과물이 누구의 사고에서 나왔는지는 점점 더 가려진다. 이런 환경에서 A의 비율을 인위적으로 재분배하는 일은 실질보다 외관을 손보는 데 가깝다.

"진심으로 채점하라"는 예일의 원칙

예일대 채점 위원회가 내놓은 원칙은 다른 길을 가리킨다. "우리가 의미하는 대로 채점하라." 까다로운 강의에서 15퍼센트만 A를 받을 자격이 된다면 그대로 두면 된다. 30퍼센트가 진짜로 숙달을 입증했다면 그들은 받은 만큼 받아야 한다. 비율을 먼저 정하고 거기에 사람을 맞추는 대신, 기준을 먼저 세우고 그 기준을 통과한 만큼을 인정한다.

다만 이 원칙은 제도의 유인 구조를 크게 다시 짜야 성립한다. 엄정한 기대치, 의미 있는 평가, 그리고 기준을 일관되게 지키려는 교수진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함께 와야 한다. 성적 인플레이션이 예측 가능하게 반복되는 이유는 개별 채점자의 느슨함이 아니라, 느슨함을 보상하는 시스템에 있다. 기준을 세우는 일과 그 기준을 지키는 사람을 지켜주는 일은 분리되지 않는다.

좋은 사람도 나쁜 시스템은 못 이긴다

대학은 승진, 정년 보장, 보수 결정에서 학생의 강의 평가에 점점 더 기댄다. 본래 어떤 목적이었든, 이런 체계는 지적 도전보다 학생 만족을 보상하는 쪽으로 흐르곤 한다. 엄정하게 채점하면 평가 점수가 낮아질 위험이 따르고, 그 위험은 곧 직업적 비용이 된다. 기준을 지키려는 사람이 기준을 지킬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경영 이론가 W. 에드워즈 데밍은 "나쁜 시스템은 좋은 사람을 매번 이긴다"고 했다. 한국의 평가 현장에도 그대로 옮겨오는 통찰이다. 어떤 평가든 채점자에게 느슨함의 보상과 엄정함의 처벌을 동시에 걸어두면, 개인의 양심에 호소하는 방식으로는 흐름을 되돌리지 못한다. 무엇을 보상하는 구조인지를 먼저 들여다봐야 사람의 선택이 보인다.

만족도 설문 너머의 수업 평가

일부 기관은 전통적 강의 평가의 한계를 이미 인정하기 시작했다. 콜로라도 볼더, 캔자스, 매사추세츠 애머스트 대학교 등이 참여한 TEval 이니셔티브는 만족도 설문에 주로 기대던 방식을 넘어서려 한다. 동료 평가, 교육 포트폴리오, 수업 관찰, 그리고 학생이 실제로 무엇을 배웠는지에 관한 증거로 수업을 평가하는 더 넓은 체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연구 평가가 최근 들어 현실의 성과와 사회적 영향에 무게를 옮겨온 것처럼, 수업 평가도 성적 분포에서 눈을 떼고 학생이 분석력·윤리적 추론·비판적 사고·문제 해결력을 정말로 키워가는지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 만족이 아니라 학습이 평가의 대상이 될 때, 점수는 비로소 무엇을 가르쳤는지를 담는 그릇이 된다.

성적표를 다시 읽는 한 가지 방법

학업 기준은 희소성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고 회복되지 않는다. 대학이 유인 구조를 엄정함·정직·의미 있는 학습에 맞출 때, 그래서 성적이 할당이나 곡선이나 행정적 외관이 아니라 진짜 숙달을 비출 때 비로소 돌아온다. 라오의 결론은 평가를 손보려는 모든 자리에 적용된다.

그렇다면 성적표를 받아 든 쪽이 바꿀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숫자나 등급 자체를 묻는 대신, 그 뒤에 어떤 증거가 있는지를 묻는 일이다. 이 점수는 무엇을 할 줄 알게 되었음을 보여주는가, 아니면 그저 같은 방에 있던 사람들보다 앞섰음을 보여주는가. 결과물이 AI의 도움으로 매끄러워진 시대일수록, 점수 한 칸의 무게보다 그 칸을 채운 실제 이해를 들여다보는 습관이 평가를 다시 신뢰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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