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독서
스무 쪽을 끝까지 읽지 못하는 세대
긴 글을 끝까지 읽고 의미를 붙드는 능력이 무너지고 있다. 미국 대학 강의실에서 20쪽 분량의 글을 완독한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는 보고는 개인의 게으름이나 한 학기의 우연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글쓴이는 이 현상을 측정 가능한 세대적 변화로 제시한다. 한국에서 영어 독해는...

긴 글을 끝까지 읽고 의미를 붙드는 능력이 무너지고 있다. 미국 대학 강의실에서 20쪽 분량의 글을 완독한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는 보고는 개인의 게으름이나 한 학기의 우연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글쓴이는 이 현상을 측정 가능한 세대적 변화로 제시한다. 한국에서 영어 독해는 지문 처리 속도와 문제풀이 기술로 좁혀지기 쉽다. 이 과정에서 정작 사라지는 것은 장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며 뜻을 붙잡는 지속 독해력 자체다.
끝까지 읽지 못한 스무 쪽
타일러 자그트(Tyler Jagt)는 2026년 6월 1일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에 자신의 수사학·글쓰기 수업 이야기를 적었다. 학기가 6주 지난 시점에 자그트는 20쪽짜리 글 한 편을 과제로 냈다. 지난 5년간 똑같은 분량을 내왔고 10년 전 자신이 학부생일 때 불평 없이 읽던 분량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글을 끝까지 읽은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이유를 묻자 한 학생이 솔직하게 답했다. 너무 길었고 무엇에 관한 글인지 자꾸 놓쳤다고 했다. 보충 수업이 아니었다. 입학 전형을 통과하고 합격할 만큼 좋은 에세이를 써낸 학생들이었다. 그런데도 평범한 학술 읽기 과제 하나가 학생들을 무너뜨렸다. 자그트는 교수들이 대대로 요즘 학생은 못 읽는다고 불평해 왔고 그런 한탄이 대개 과장이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이번에는 데이터가 일화를 따라잡았다고 본다.
게으름이 아니라 길러지지 못한 능력
같은 진단을 먼저 내놓은 사람이 있었다. 2024년 2월, 노스센트럴 칼리지의 샤이머 그레이트 북스 스쿨에서 가르치는 애덤 코츠코(Adam Kotsko)는 Slate에 이렇게 썼다. 한때 한 차시에 30쪽을 소화하던 학생들이 이제는 10쪽이 넘는 글 앞에서 위축되고 20쪽 정도의 읽기에서는 아무런 실질적 이해 없이 걸어 나간다고 했다.
중요한 대목은 코츠코가 덧붙인 한 문장이다. 이것은 학생들의 게으름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이 한 번도 길러볼 기회를 얻지 못한 바탕 능력의 문제다. 못 읽는 것이 아니라, 길게 읽고 버티는 근육을 쌓을 시간을 통째로 건너뛴 채 대학에 도착했다. 이 구분은 책임의 방향을 바꾼다. 학생 개인을 다그치는 대신, 학생들이 거쳐 온 교육 구조 전체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자그트가 학계의 대응을 구조적 개편이 아니라 임기응변과 소진이라고 부른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입학 성적이 높은 학교에서도 무너진다
이 현상은 준비가 덜 된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이 2024년에 진행한 조사는 서로 성격이 전혀 다른 학교들에서 같은 패턴을 발견했다. 스티븐스 공과대학(Stevens Institute of Technology)과, 평균 SAT 점수가 1400을 넘는 웰즐리 칼리지(Wellesley College)가 함께 묶였다.
웰즐리의 조교수 니콜라우스 구티에레스(Nicholaus Gutierrez)는 학생들이 적당하다고 여기는 과제량의 기준선이 눈에 띄게 낮아져서 자신도 읽기 분량을 거기에 맞춰 줄였다고 말했다. 750단어짜리 에세이가 이제 많은 학생에게 길게 느껴진다고 했다. 750단어는 이 문단들 몇 개에 불과한 길이다. 입시 경쟁을 뚫고 들어온, 누구도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학생들에게서 같은 신호가 나온다는 사실이 이 변화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기 어렵게 만든다.
1992년 이래 가장 낮은 점수
일화 옆에 숫자가 놓이면 그림은 더 차가워진다. 가장 최근의 종합적 쓰기 평가인 2011년 미국 학업성취도평가(NAEP) 쓰기 영역에서, 12학년 중 능숙(Proficient) 수준에 도달한 학생은 24퍼센트에 그쳤다. 우수(Advanced)는 3퍼센트였고 21퍼센트는 기초(Basic) 미만이었다.
읽기 쪽은 더 나쁘고 더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 2025년 9월 공개된 2024년 NAEP 결과에서 12학년 읽기 점수는 평가가 시작된 1992년 이래 기록된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12학년의 32퍼센트가 읽기에서 NAEP 기초 미만이다. 평가가 쓴 표현 그대로, 텍스트에 명시적으로 제시된 개념을 바탕으로 일반적인 결론을 끌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같은 학년 학생의 절반 이상이 4년제 대학에 합격했다고 답했다. 읽기 능력의 바닥과 진학률의 천장이 같은 집단 안에서 동시에 나타난다.
눈높이를 맞추다 지친 교실
현장 교사들의 언어에는 피로가 배어 있다. 스티븐스 공과대학에서 과학기술학을 가르치는 부교수 테레사 맥페일(Theresa MacPhail)은 학생들이 있는 자리에서 학생들을 만나라는 격언을 너무 오래 따른 나머지, 자신이 셔플보드 게임을 진행하는 크루즈 디렉터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가르치는 일이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에서, 낮아진 기준선에 맞춰 오락을 안배하는 일로 미끄러진 셈이다.
자그트가 학계의 반응을 임기응변과 소진이라고 부른 것은 이런 풍경을 두고 한 말이다. 분량을 줄이고 과제를 쪼개고 기대치를 낮추는 개별 교사의 적응은 당장의 강의실을 굴러가게 한다. 그러나 그런 적응이 쌓일수록 긴 글을 끝까지 읽는다는 경험 자체가 교육 과정에서 빠져나간다. 한 사람이 견딜 수 있는 분량의 하한선이, 모두가 합의한 정상값으로 굳어진다.
한국에서 독해가 기술로 축소될 때
한국에서 영어 독해는 오랫동안 효율의 언어로 다뤄졌다. 빠르게 훑고 키워드를 잡고 정답 근거가 들어 있는 한두 문장을 찾아내는 능력이 독해력의 사실상 전부처럼 취급된다. 이 방식은 짧은 지문을 처리하는 데는 잘 작동한다. 문제는 그렇게 단련된 눈이 20쪽짜리 글 앞에서는 길을 잃는다는 점이다. 자그트의 학생이 무엇에 관한 글인지 자꾸 놓쳤다고 한 말은, 부분을 빠르게 처리하는 훈련과 전체를 오래 붙드는 훈련이 다른 능력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가리킨다.
지속 독해력은 속도의 반대편에서 작동한다. 한 편의 글이 어디서 출발해 어떻게 방향을 틀고 무엇으로 마무리되는지를, 중간에 흐름을 놓치지 않고 머릿속에 쥐고 가는 힘이다. 이 힘은 짧은 글을 아무리 많이 풀어도 자동으로 길러지지 않는다. 코츠코의 지적대로, 길러볼 기회를 주지 않으면 처음부터 생기지 않는 능력이다. 영어든 모국어든, 긴 텍스트를 끝까지 따라가 본 경험의 총량이 곧 독해력의 깊이가 된다.
긴 글 한 편을 다시 손에 쥐는 일
이 글을 읽고 바꿀 수 있는 한 가지는, 분량을 줄이는 방향으로만 적응해 온 습관을 의심해 보는 일이다. 읽기가 버겁다는 신호 앞에서 자동으로 더 짧은 글, 더 잘게 쪼갠 요약으로 후퇴하면 당장은 편하다. 그러나 그런 후퇴가 쌓이면 긴 글을 견디는 근육은 영영 만들어지지 않는다. 스무 쪽을 못 읽는 것이 출발점이 아니라, 스무 쪽을 시도해 본 적 없는 것이 출발점이다.
그래서 필요한 처방은 의외로 단순하다. 끝까지 읽어낼 분량의 긴 글을 일부러 한 편 고르고 속도와 정답 찾기를 잠시 내려놓은 채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을 붙잡으며 읽어 보는 일이다. 무엇에 관한 글인지 마지막 문장까지 놓치지 않는 경험, 그 한 번의 완독이 측정 가능한 붕괴 앞에서 개인이 쥘 수 있는 가장 구체적인 반작용이다. 독해력은 결국 끝까지 읽어 본 글의 수만큼만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