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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수업

화면이 많아질수록 학습은 줄어든다 — 에듀테크의 그늘과 한국 교실의 선택

학교는 화면으로 가득 차 있고 그 흐름에 대한 반작용도 시작됐다. 미국에서는 수십 개 주가 학교 내 휴대폰을 금지하는 동시에 교육청들은 AI 활용 계획을 앞다퉈 발표한다. 신경과학자 조레드 쿠니 호바스(Jared Cooney Horvath)는 신간 『The Dig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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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이 많아질수록 학습은 줄어든다 — 에듀테크의 그늘과 한국 교실의 선택

학교는 화면으로 가득 차 있고 그 흐름에 대한 반작용도 시작됐다. 미국에서는 수십 개 주가 학교 내 휴대폰을 금지하는 동시에 교육청들은 AI 활용 계획을 앞다퉈 발표한다. 신경과학자 조레드 쿠니 호바스(Jared Cooney Horvath)는 신간 『The Digital Delusion』에서 이 모순을 정면으로 다룬다. 멜버른대에서 인지신경과학 박사를 받고 하버드와 하버드 의대를 거친 호바스는 미 상원 청문회에서 에듀테크의 문제점을 증언했고 이 영상은 200만 회 이상 재생됐다. EdWeek의 릭 헤스(Rick Hess)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호바스가 짚은 핵심은 한국의 수능·내신·학원 현장에도 그대로 닿는다. 디지털 도구를 얼마나 쓰느냐가 아니라, 어떤 학습 행위를 대체하고 있느냐가 문제다.

플린 효과의 반전, 그리고 2010년대 초의 분기점

20세기 내내 인류의 인지 능력 측정치는 꾸준히 올랐다. 기억, 주의, 실행기능을 측정한 결과를 IQ 점수로 환산하면 세대마다 평균 6점씩 올라갔다는 것이 잘 알려진 플린 효과다. 그런데 호바스는 지난 15년 사이 이 흐름이 뒤집혔다고 지적한다. 문해력, 수리력, 작업기억, 주의력 같은 거의 모든 지표에서 가장 어린 세대의 점수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거론되지만 반전이 시작된 시점을 찬찬히 보면 한 가지 사건이 두드러진다. 2010년대 초, 디지털 기술이 학교를 포함한 청소년의 삶 거의 모든 영역에 동시 다발적으로 들어온 시기다.

한국에 대입해 보면 이 시점은 스마트폰 보급률이 급격히 올라가고 교육청별로 전자칠판과 태블릿 보급 사업이 본격화된 시기와 겹친다. 디지털 교과서 시범 도입과 EBS 온라인 강의 확장도 같은 흐름이다. 코로나19를 지나며 줌 수업과 구글 클래스룸, AI 튜터형 앱 사용은 일상이 됐다. 호바스가 말하는 인지 능력 하락의 시작점과 한국 학생들이 종이 교과서보다 화면을 더 오래 보기 시작한 시점이 비슷하게 겹친다는 사실은 가볍게 넘길 신호가 아니다. 학원에서 수업 중 태블릿으로 지문을 보고 단어 암기는 앱으로, 오답노트는 클라우드로 정리하는 방식이 표준이 된 지금, 무엇이 늘었고 무엇이 줄었는지를 점검할 시점이 됐다.

PISA가 보여준 하루 6시간 이상의 그림자

호바스는 PISA 평가 데이터를 인용한다. 학교에서 컴퓨터를 하루 6시간 이상 사용하는 학생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학생보다 평균 66점 낮은 점수를 받았다. PISA 척도에서 66점은 표준편차의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큰 차이다. 단순히 기기를 쓰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식의 단정으로 환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많이 쓸수록 좋다는 가정은 설득력을 잃는다.

한국의 PISA 결과는 여전히 OECD 상위권이지만 읽기 영역의 하락 추세와 긴 글을 끝까지 읽지 못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는 현장 교사들의 우려는 이미 여러 해째 반복되어 왔다. 수능 국어와 영어 비문학 지문이 점점 길어지고 한 지문 안에서 정보를 비교·통합해야 하는 문항이 늘어나는 구조 안에서, 짧은 화면 스크롤에 익숙해진 학생이 종이 시험지 위에서 30줄 넘는 지문을 정독하는 일은 점점 더 큰 근력을 요구한다. 학원에서 교재를 PDF로만 보던 학생이 모의고사 당일 종이 위에서 길을 잃는 사례는 영어 강사들 사이에서 흔히 회자된다. 호바스의 PISA 인용은 화면 시간 자체보다, 화면이 무엇을 대체했는가를 묻는 질문에 가깝다.

인간은 뇌만이 아니다 — 체화된 학습이라는 개념

인터뷰에서 가장 강조된 명제는 인간은 뇌가 아니라는 말이다. 호바스는 학습이 회백질 안에서만 일어난다고 보는 중앙처리장치 비유를 거부한다. 인간은 심장, 폐, 손끝,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감정과 맥락이 함께 작동해야 학습이 일어나는 체화된 존재다. 호바스가 2000년대 초 “뇌의 10년”을 거치며 brain-based learning을 좇아 신경과학으로 향했던 이유도, 그 환원주의적 관점이 교실에서 작동하지 않더라는 경험에서 출발했다.

이 관점은 한국 교실에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하다. 자기주도학습이라는 단어가 아이 혼자 태블릿을 붙잡고 AI 튜터와 푸는 시간으로 좁아지는 동안, 정작 빠진 것은 친구와의 토론, 교사와의 눈맞춤, 손으로 풀이를 적어 내려가는 신체적 감각이다. 중·고등학교 내신 서술형 문항이 요구하는 것은 맥락 안에서 자기 언어로 정리하는 힘인데, 이 힘은 화면 위 객관식 클릭으로는 길러지기 어렵다. 학원이 1:1 AI 코칭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강사가 학생 옆에서 풀이를 함께 짚고 손으로 첨삭하는 시간을 줄이지 않는 곳이 결과를 낸다.

휴대폰 금지와 AI 도입이 동시에 일어나는 모순

호바스가 짚은 또 하나의 풍경은 정책의 분열이다. 미국 다수 주가 교실 내 휴대폰 사용을 금지하는 같은 시기에, 학교와 교육청은 AI 도입 액션 플랜을 앞다투어 내놓는다. 한 손으로는 화면을 치우면서 다른 손으로는 더 정교한 화면을 들이미는 셈이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교육부가 디지털 기반 교육 혁신을 추진하며 AI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하는 흐름과, 학교 현장에서 수업 집중도 저하와 사이버 괴롭힘을 이유로 휴대폰 수거를 강화하는 흐름이 공존한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스마트폰은 뺏는데 왜 태블릿은 손에 쥐여주느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호바스의 답은 명료하다. 기기 자체가 선악인 것이 아니라, 그 기기가 어떤 학습 행위를 대체하는지가 문제다. 종이 위 정독, 손으로 풀이, 친구와의 설명, 교사의 즉시 피드백을 대체하는 형태의 디지털 도입은 비용 대비 효과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 반대로 반복 연습의 채점 자동화나 데이터 기반 약점 진단처럼, 교사·강사의 시간을 더 사람다운 일에 쓰게 해주는 방향의 디지털 활용은 다른 평가를 받을 만하다.

영어학원이 다시 들여다봐야 할 배합의 문제

호바스의 비판은 에듀테크 전면 거부가 아니다. 호바스는 디지털 기기를 무엇과 어떻게 배합하느냐가 핵심이라고 본다. 영어학원의 일상에 옮기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AI 튜터가 만든 맞춤 문항이 학생의 읽고 쓰는 근력을 길러주는 방향으로 쓰이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클릭 수를 늘리는 데 그치고 있는가.

현장에서 효과가 좋다고 보고되는 배합은 의외로 단순하다. 화면으로 짧게 진단하고 핵심 지문은 출력해 종이 위에서 끊어 읽기와 직독직해를 손으로 표시한다. 단어는 앱으로 1차 노출하되 시험은 백지 인출로 마무리한다. 오답은 클라우드에 자동 저장되더라도, 학생이 손으로 다시 옮겨 쓰는 필사형 오답노트를 병행한다. 수능 영어 비문학·EBS 연계 지문처럼 길고 추상적인 텍스트일수록, 화면 스크롤보다 종이 위 밑줄과 화살표가 이해를 단단하게 만든다는 강사들의 경험적 합의도 호바스의 체화된 학습 개념과 맞닿는다. AI 튜터가 잘하는 일과 종이·연필·교사가 잘하는 일을 분리해 배치하는 것, 이것이 디지털을 많이 쓰는 학원과 잘 쓰는 학원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학부모와 교사가 지금 점검할 다섯 가지

호바스의 인터뷰는 정책 비판으로 읽히지만 가정과 교실의 점검표로도 충분히 작동한다. 먼저 아이가 하루 중 화면이 아닌 종이 위에서 글을 읽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측정해 본다. 손으로 쓰는 필기 분량이 학년이 올라가며 줄고 있지는 않은지도 살핀다. AI 튜터·인강·앱이 교사·강사와의 대면 피드백을 보조하는지 대체하는지를 구분한다. 단어와 문법 같은 반복 학습은 디지털로 효율을 높이되, 추론·요약·서술형 같은 고차 사고는 종이와 사람이 개입하는 시간을 따로 확보한다. 끝으로 학교와 학원의 디지털 도입 발표를 들을 때 무엇을 새로 한다가 아니라 무엇을 줄이거나 대체한다를 함께 묻는다.

플린 효과의 반전이 한 세대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아니다. 호바스 자신이 K-12 교사 출신으로서 강조하는 것도, 인지 능력의 하락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어른들이 만든 환경의 결과이며 따라서 환경을 바꾸면 회복 가능하다는 점이다. 한국 교육이 수능과 내신, 학원과 EBS, 디지털교과서와 AI 튜터 사이에서 균형점을 다시 잡으려 한다면, 출발점은 화려한 도입 사례가 아니라 이 기술이 우리 아이의 어떤 학습 행위를 대체하고 있는가라는 한 줄짜리 질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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