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I·수업

AI로 가능한 과제가 많아질 때, 성적은 무엇을 증명하는가

베스 맥머트리의 Teaching 뉴스레터가 소개한 이고르 치리코프의 워킹페이퍼는 AI로 수행 가능한 과제가 많은 강좌에서 A 비율이 크게 늘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핵심은 AI 사용을 부정행위 여부로만 가르는 일이 아니라, 과제가 무엇을 평가하는지와 학습 진정성을 어떻게...

MakeItClear읽는 시간 7분

AI로 가능한 과제가 많아질 때, 성적은 무엇을 증명하는가

베스 맥머트리의 Teaching 뉴스레터가 소개한 이고르 치리코프의 워킹페이퍼는 AI로 수행 가능한 과제가 많은 강좌에서 A 비율이 크게 늘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핵심은 AI 사용을 부정행위 여부로만 가르는 일이 아니라, 과제가 무엇을 평가하는지와 학습 진정성을 어떻게 확인할지의 긴장이다. 수능, 내신, EBS, 교육과정, 학원가의 평가 도구도 이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AI 노출 강좌가 던진 성적의 경고음

추천 원본이 전한 사실은 간명하다.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 에듀케이션의 Teaching 뉴스레터는 이고르 치리코프의 워킹페이퍼를 소개했다. 워킹페이퍼는 AI로 수행 가능한 과제가 많은 강좌에서 A 비율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AI로 수행 가능하다는 말이다. 과제가 학습자의 머릿속 과정보다 제출 결과물에 치우쳐 있을수록, AI 학습 도구의 개입 가능성은 커진다. 그때 성적은 학습자의 이해를 보여주는 지표인지, 도구를 동원해 완성한 결과물의 품질을 보여주는 지표인지 불분명해진다.

한국 학원가에서 이 문제는 단순히 대학 강좌의 소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신 서술형 대비 자료, 수능형 독해 과제, EBS 지문 분석 과제, 교육과정 기반 탐구 보고서, 코딩 과제처럼 결과물로 평가하기 쉬운 활동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추천 원본은 한국 학교나 학원을 조사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따라서 한국 현장에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과제 평가와 학습 진정성의 긴장이 커진다는 문제의식은 한국 교실과 학원 수업에도 그대로 번역될 수 있다.

A의 증가가 말해주는 평가의 취약점

A 비율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은 성적 인플레이션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표현을 단순히 학생이 쉬운 길을 택했다는 비난으로만 읽으면 핵심이 흐려진다. 추천 원본의 insight는 AI 사용을 단순 부정행위 논쟁으로만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질문은 학생의 도덕성 하나로 좁혀지지 않는다. 과제가 AI로 수행 가능한 형태였는지, 평가 기준이 결과물의 매끈함에 지나치게 의존했는지, 연습의 의미가 점수 산출 과정에서 사라졌는지가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내신 영어 서술형에서 완성 문장만 보고 점수를 매기는 경우, 수능 영어 독해 과제에서 정답과 해설문만 제출받는 경우, EBS 지문 요약을 결과물 파일로만 받는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이것이 모두 문제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결과물만으로는 학습자가 어떤 시행착오를 거쳤는지 알기 어렵다. 평가 도구가 산출물의 정확성만 잡아내면, 연습 과정의 밀도는 성적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수 있다. AI 교육이 필요한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AI를 금지할지 허용할지보다, AI가 개입해도 성적이 학습을 설명하도록 설계하는 일이 먼저다.

쓰기와 코딩에서 더 선명해지는 진정성

추천 원본은 쓰기와 코딩처럼 결과물만 보기 쉬운 학습에서 특히 참고할 만하다고 했다. 이 두 영역은 완성품이 선명하다. 글은 문단과 문장으로 남는다. 코딩은 실행 결과나 코드로 남는다. 그래서 평가자는 결과물을 보고 판단하기 쉽다. 하지만 바로 이 점 때문에 학습 과정의 진정성이 흐려질 수 있다. 완성된 글이 유창하다고 해서 문장 구조를 이해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작동하는 코드가 있다고 해서 문제 해결 절차를 스스로 구성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국 교실과 학원 수업에서 쓰기는 내신 서술형, 수행형 글쓰기, EBS 지문 요약, 수능 영어 빈칸 추론 해설 작성 등과 연결된다. 코딩은 교육과정 속 문제 해결 활동이나 별도 학원 커리큘럼에서 결과물 중심 과제로 나타날 수 있다. 추천 정보는 특정 교과나 한국 제도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과물만 보기 쉬운 학습이라는 특징은 평가 설계의 공통 위험을 설명한다. 따라서 강사는 제출물의 완성도만이 아니라 초안, 수정 이유, 오류 기록, 풀이 순서 같은 학습 흔적을 성적 판단의 일부로 끌어올 필요가 있다. 이런 흔적은 AI를 적발하기 위한 장치라기보다 학습을 다시 보이게 만드는 장치이다.

부정행위 논쟁을 넘어 과제 설계로

AI 사용을 부정행위로만 다루면 수업은 금지 규칙의 목록으로 좁아진다. 추천 원본의 insight는 이 좁은 틀을 넘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과제 설계, 평가 방식, 연습의 의미를 다시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학생이 AI를 썼는지 아닌지만 묻지 않는다. 왜 이 과제가 AI로 쉽게 대체될 수 있었는지, 이 과제가 본래 측정하려던 능력은 무엇인지, 그 능력을 확인할 다른 증거는 무엇인지 묻는다. 성적 인플레이션은 이런 질문을 미루었을 때 나타나는 신호로 읽을 수 있다.

학원가의 과제는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경우가 많다. 수능 대비에서는 정답률과 풀이 시간이 중요하다. 내신 대비에서는 학교별 범위와 예상 문항이 중요하다. EBS 기반 수업에서는 지문 정리와 변형 문제가 중요하다. 이 구조 속에서 과제는 빠르게 내고 빠르게 채점되어야 한다. 그러나 AI로 수행 가능한 과제가 많아질수록 빠른 채점만으로는 학습 진정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평가 도구가 편리할수록 강사는 이 도구가 무엇을 놓치는지 함께 봐야 한다. 결과의 정확성, 과정의 설명 가능성, 연습의 반복성을 분리해 보는 설계가 필요하다.

성적표보다 앞서야 할 연습의 의미

추천 원본이 강조한 긴장은 과제 평가와 학습 진정성 사이에서 나온다. 여기서 학습 진정성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다. 학생이 실제로 생각하고 틀리고 고치고 다시 시도한 흔적이 성적과 연결되는가의 문제이다. AI가 결과물 생산을 도울 수 있을수록 연습은 더 중요해진다. 연습이 점수와 무관한 준비 단계로 밀려나면, 학생은 완성품을 제출하는 능력만 키우게 된다. 반대로 연습이 평가 안으로 들어오면, 성적은 결과물뿐 아니라 학습의 이동 경로를 설명하게 된다.

수능 수업에서도 이 관점은 적용된다. 오답노트가 단순 정답 기록에 그치면 결과물 과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신 대비에서도 해설 암기만 확인하면 학습자의 판단 과정을 보기 어렵다. EBS 지문 분석에서도 최종 요약문만 받으면 어떤 문장을 근거로 핵심을 잡았는지 알기 어렵다. 교육과정 기반 수업에서도 활동 결과물만 남기면 연습의 의미가 약해질 수 있다. AI 학습 도구가 있는 환경에서는 연습을 평가 밖으로 밀어내지 않는 설계가 필요하다. 이 설계는 학생을 의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적이 학습을 배반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다음 수업에서 바꿀 한 가지 평가 칸

강사가 바로 바꿀 수 있는 한 가지는 과제 제출 양식에 ‘연습 근거’ 칸을 추가하는 일이다. 이 칸은 긴 보고서가 아니어도 된다. 수능 독해 과제라면 처음 고른 오답과 바꾼 이유를 쓰게 한다. 내신 서술형 과제라면 문장을 고친 지점과 그 이유를 남기게 한다. EBS 지문 요약이라면 핵심문장으로 판단한 근거를 표시하게 한다. 코딩 과제라면 오류가 난 지점과 수정 순서를 적게 한다. 중요한 것은 최종 결과물 옆에 학습 과정의 작은 증거를 붙이는 구조이다.

이 변화는 AI 사용 여부를 심문하는 장치가 아니다. 추천 원본이 던진 문제처럼, AI로 수행 가능한 과제가 많아질 때 성적이 무엇을 증명하는지 다시 묻는 장치이다. 다음 커리큘럼이나 평가 도구를 손볼 때 결과물 점수와 연습 근거 점수를 분리해 적는 방식도 가능하다. 완성도는 완성도로 본다. 과정은 과정으로 본다는 원칙이다. 이렇게 하면 과제 설계는 부정행위 단속을 넘어 학습 진정성을 확인하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성적 인플레이션의 위험 앞에서 강사가 먼저 조정할 지점은 더 많은 금지 문구가 아니라, 연습이 보이는 평가 칸 하나이다.

관련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