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수업
기업은 AI를 효율에 쓴다. 이제 성장에 쓸 차례다
AI를 도입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은 대개 같다. 무엇을 줄일 수 있는가. 비용, 인력, 처리 시간. Harvard Business Review에 실린 Shlomo Benartzi와 Randall Long, Stefano Puntoni의 글은 이 반사적인 질문 자체를...

AI를 도입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은 대개 같다. 무엇을 줄일 수 있는가. 비용, 인력, 처리 시간. Harvard Business Review에 실린 Shlomo Benartzi와 Randall Long, Stefano Puntoni의 글은 이 반사적인 질문 자체를 문제 삼는다. AI를 더 적은 비용으로 같은 일을 하는 도구로만 보는 순간, 정작 AI가 열어줄 다른 가능성은 시야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효율이라는 반사작용
경영진에게 AI가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 물으면 대답은 비슷한 곳으로 모인다. 비용을 낮추고 인원을 줄이고 절차를 빠르게 하고 조직을 가볍게 만든다. 효율, 효율, 또 효율. Benartzi와 동료들은 이 반응이 거의 모든 곳에서 똑같이 나타나는 반사작용이라고 적는다. 그리고 잘못된 반사작용이라고 잘라 말한다.
이 진단이 불편한 이유는 효율이 틀린 목표여서가 아니다. 효율은 측정하기 쉽고 보고하기 좋다. 줄어든 비용은 숫자로 찍히고 단축된 시간은 그래프로 그려진다. 성과로 내세우기에 이만큼 깔끔한 지표가 없다. 문제는 이 깔끔함이 사고의 범위를 결정해버린다는 데 있다. 측정하기 쉬운 것만 목표가 되면, 측정하기 어려운 가능성은 애초에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한다.
AI 도입 보고서를 들춰보면 대부분 같은 언어로 채워져 있다. 처리 건수, 응답 속도, 절감된 인건비. 무엇을 더 잘하게 됐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덜 쓰게 됐는가로 성패를 가른다. 도구는 새것인데 묻는 방식은 예전 그대로다.
비용 절감이 닿는 천장
효율화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 줄일 수 있는 비용에는 바닥이 있기 때문이다. 인력을 절반으로 줄이면 다음에는 4분의 1을 줄여야 하고 그다음에는 더 줄일 곳이 없다. 효율은 빼기의 게임이고 빼기는 0에서 멈춘다.
성장은 다른 방향을 본다. 새로운 고객을 만들고 없던 시장을 열고 기존 고객이 더 많은 가치를 느끼게 만든다. 더하기의 게임에는 천장이 없다. Benartzi와 동료들이 AI를 성장의 도구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여기서 나온다. 같은 기술을 두고도 빼기에 쓰면 곧 한계에 부딪히고 더하기에 쓰면 한계가 사라진다.
이 차이는 단순한 낙관론이 아니다. 효율만 쫓는 기업은 경쟁사와 똑같은 비용 구조에 수렴한다. 모두가 같은 AI 도구로 같은 절감을 달성하면, 절감 자체는 차별점이 되지 못한다. 남보다 싸게 만드는 능력은 남들도 곧 따라잡는다. 그러나 남이 못 만드는 가치를 만드는 능력은 쉽게 복제되지 않는다.
넛지 머신이라는 단서
글쓴이 중 한 명인 Benartzi는 행동경제학자다. Benartzi가 공동 설계한 Save More Tomorrow는 2천5백만 명의 미국인이 은퇴 저축을 늘리도록 도운 프로그램이다. 사람들에게 돈을 더 모으라고 설득한 것이 아니라, 임금이 오를 때 저축률이 자동으로 따라 오르게 설계를 바꿨을 뿐이다. 행동을 바꾸는 일은 의지를 짜내는 일이 아니라 선택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라는 발상이다.
Benartzi가 지금 매달리는 작업이 AI Nudge Machine이다. 이름 그대로 AI를 성장과 행동 변화를 대규모로 일으키는 장치로 쓰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서 AI의 역할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선택을 바꾸는 것이다. 비용을 깎는 자리에 AI를 넣는 대신, 사람들이 더 나은 결정을 내리도록 돕는 자리에 넣는다.
이렇게 보면 AI의 쓸모는 속도나 단가가 아니라 영향력으로 측정된다. 몇 명이 행동을 바꿨는가, 바뀐 변화가 어떤 가치를 만들었는가. 효율 지표로는 잡히지 않는 숫자다.
성장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성장을 자동화의 결과로 오해하기 쉽다. AI가 알아서 더 많이 팔아주고 더 많이 만들어줄 것이라는 기대다. 그러나 Benartzi의 출발점은 다르다. 성장은 누군가의 행동이 바뀔 때 일어난다. 고객이 다른 선택을 하고 직원이 다른 방식으로 일하고 시장이 다른 흐름으로 움직일 때.
AI를 행동 변화의 도구로 본다는 것은 질문을 바꾼다는 말이다. 이 업무를 얼마나 빨리 끝낼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도구로 누구의 어떤 행동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를 묻는다. 앞의 질문은 한 번 답하면 끝나지만 뒤의 질문은 계속 새로운 답을 만들어낸다.
행동 변화는 효율화보다 어렵다. 비용은 결재 한 번으로 줄지만 사람의 선택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일단 만들어진 변화는 쉽게 되돌아가지 않는다. Save More Tomorrow가 한 번 설계된 뒤 수천만 명에게 작동한 것처럼, 행동을 바꾸는 구조는 시간이 갈수록 복리로 효과를 키운다. 효율이 일회성 절감이라면 행동 변화는 누적되는 자산이다.
같은 도구를 두고 갈리는 길
이 글을 쓴 세 사람의 배경은 우연이 아니다. Benartzi는 행동경제학자이고 Stefano Puntoni는 Wharton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며 Wharton Human-AI Research를 이끈다. Randall Long은 투자자문사 SageView를 세워 키운 뒤 2025년 12월 Creative Planning에 매각했다. 비용을 깎는 기술자가 아니라 가치를 만들고 사람을 움직이는 일을 해온 사람들이 AI를 성장의 언어로 다시 정의하려 한다.
핵심은 도구가 아니라 질문이다. 같은 생성형 AI를 두고 한 회사는 고객센터 인력을 줄이는 데 쓰고 다른 회사는 고객이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응대를 설계하는 데 쓴다. 출발점이 다르면 몇 년 뒤 도착점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벌어진다.
효율로 출발한 회사는 경쟁사와 같은 비용선에서 만나고 성장으로 출발한 회사는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자리로 간다. 기술은 똑같이 주어졌는데 결과가 갈리는 이유는 처음에 무엇을 물었는가로 갈린다.
줄일 것 대신 만들 것을 묻기
AI 도입을 검토하는 자리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을 한 번 바꿔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무엇을 줄일 수 있는가 대신, 이 도구로 무엇을 새로 만들 수 있는가. 누구의 어떤 행동을 더 나은 쪽으로 움직일 수 있는가.
이 전환은 거창한 전략 회의가 아니라 질문의 순서에서 시작된다. 효율 항목을 앞서 채우고 성장은 여유가 생기면 보겠다는 순서가 문제다. 측정하기 쉬운 것이 늘 앞자리를 차지하고 측정하기 어려운 가능성은 매번 다음으로 밀린다. 순서를 뒤집으면 논의의 무게중심이 옮겨간다.
Benartzi와 동료들의 주장은 AI가 비용을 줄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비용 절감에서 멈추지 말라는 말이다. 빼기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더하기의 가능성을 함께 보는 것. AI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첫 질문이 바뀌면, 손에 든 도구가 끝내 무엇이 될지도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