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수업
학부모 97%의 AI 불안, 설문이 말하는 진짜 이유
학부모 97%가 AI 교육을 불안해한다는 설문이 드러내는 것은 AI의 위험이 아니다. 수능·내신 구조 안에서 정보 비대칭이 어떻게 97%의 불안을 만드는지, 85%의 학습 욕구가 실제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한국 교육 맥락에서 분석한다.

97%. 열 명 중 열 명에 가까운 학부모가 "자녀 교육에서 AI가 불안하다"고 답했다. 2026년 초 발표된 대규모 학부모 대상 설문에서 나온 숫자다. 그런데 같은 조사 안에 또 하나의 숫자가 있다. 응답자의 85%는 "AI에 대해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 두 숫자 모두 같은 집단에서 나왔다. 불안하면서도 배우고 싶다. 이 칼럼이 물어야 할 질문은 왜 이 두 숫자가 공존하는가, 그리고 한국의 중·고등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 이 역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정보가 없는 자리에 불안이 들어온다
학부모가 AI를 불안해하는 이유를 '새로운 기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읽으면 절반밖에 못 본다. 설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불안 항목은 세 영역으로 압축된다. 자녀가 실제로 공부하고 있는가에 대한 학습 진정성 문제, AI를 쓰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사이에서 발생하는 형평성 문제, 그리고 자녀 데이터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개인정보 문제다. 이 세 가지는 추상적 공포가 아니다. 정보가 없어서 생기는 구체적 불확실성이다.
한국 맥락에서 이 불확실성은 더 날카롭다. 교육부는 AI 디지털교과서를 2025년에 확정하고 2026년부터 일부 교과에 시범 적용했다. 그런데 수능 시험장에서 AI 도구는 전면 금지다. 내신 수행평가에서 AI 활용 허용 범위는 학교마다, 담당 교사마다 다르다. 국어 수행평가에서 AI를 참고 용도로 쓰는 것을 허용하는 학교가 있는 반면, AI 사용 자체를 부정행위로 규정하는 학교도 있다. 학원은 더 혼란스럽다. AI 튜터를 전면 도입해 개인화 학습을 내세우는 곳이 있는 반면, 사람 강사의 직관과 경험을 고수하며 AI 없는 방식을 유지하는 곳도 적지 않다.
이 혼선 속에서 학부모는 판단 기준을 갖지 못한다. 내신 교사는 자교 수행평가 지침을 안다. 수능 출제기관은 금지 규정을 안다. 학원 강사는 자기 수업 방식을 안다. 하지만 이 정보들이 학부모에게 통합적으로 전달되는 구조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97%의 불안은 AI가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라,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위험한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 설문이 진짜로 드러내는 것은 학부모의 두려움이 아니라 교육 시스템의 커뮤니케이션 실패다.
'더 배우고 싶다'는 말의 두 가지 독법
85%가 "AI를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 이것을 '학부모들이 AI에 우호적'이라고 읽으면 틀린다. 더 정밀하게 읽으면 이렇다. 지금 내가 아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다는 걸 안다. 학습 욕구라기보다 판단 능력에 대한 자각이다.
고2 자녀를 둔 학부모의 상황을 생각해보자. 자녀가 국어 수행평가 소논문을 제출했다. 주제는 '1960년대 한국 소설에 나타난 산업화의 이중성'. 이 과제가 어떻게 완성됐는지 학부모는 모른다. AI가 전체 구조를 잡아줬는지, 참고문헌 목록을 생성했는지, 아니면 자녀가 학교 도서관에서 직접 자료를 찾고 AI는 맞춤법 교정에만 활용했는지. 교사는 결과물을 채점하지만 과정을 다 보지 못한다. 이 불투명한 과정에서 학부모가 "더 배우고 싶다"고 할 때, 그것은 AI 도구 사용법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다. 자녀의 학습 과정을 들여다볼 눈을 갖고 싶다는 욕구다.
이 구분이 실천적으로 중요하다. '배움 욕구'를 단순히 'AI 도구 활용 의지'로 해석하면, 학부모에게 AI 사용법 강좌를 제공하면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욕구의 핵심이 판별 능력이라면, 실제로 필요한 것은 다르다. AI가 생성한 문장과 학생이 쓴 문장을 구분하는 감각, AI의 도움을 받은 학습과 AI에 의존한 학습을 구별하는 질문법,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을 묻는 대화 방식이다. 도구 사용법이 아니라 도구 독해력이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교육 접근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독해력은 단번에 생기지 않는다. 수능 EBS 연계 교재를 분석하듯 AI 출력물을 읽는 훈련이 필요하다. AI가 생성한 문단과 학생이 직접 쓴 문단 사이에서 어색한 전환, 맥락 없는 정보, 출처 불명의 통계를 잡아내는 감각이 그것이다. 이 감각은 학부모에게도 필요하고, 자녀에게도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함께 기르는 가정은 아직 드물다.
한국 입시 구조가 이 설문을 비틀어 읽게 만드는 이유
미국 설문 데이터를 한국 맥락에 그대로 적용하면 어긋나는 부분이 생긴다. 미국 학부모 불안의 상당 부분은 '학교가 AI를 올바르게 활용하고 있는가'에 관한 신뢰의 문제다. 교육 철학적 차원에서의 우려다. 한국에서 이 축은 다르게 작동한다. 한국 학부모의 핵심 좌표는 여전히 수능과 내신이다. 수능에서 AI는 구조 밖에 있다. 내신에서는 허용과 금지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이 구조에서 AI에 대한 불안은 '내 아이가 AI를 써서 손해를 볼까, 안 써서 손해를 볼까'라는 입시 손익 계산에 가깝다. 교육 철학이나 학습의 진정성보다 훨씬 더 실용적이고 방어적인 계산이다.
그렇다면 '더 배우고 싶다'는 85%의 동기도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 미국 맥락에서 이것은 AI 리터러시를 시민 교육 차원에서 키우겠다는 의지일 수 있다. 한국 맥락에서는 '뒤처지지 않겠다', '남들이 다 쓰면 나도 알아야 한다'는 사교육비 불안의 연장선일 가능성이 크다. 97%의 불안과 85%의 학습 욕구가 같은 뿌리에서 나왔을 수 있다는 뜻이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별개가 아니라 같은 감정의 두 얼굴일 때, 그 학습 욕구는 불안을 줄이기 위한 방어적 소비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실제로 2026년 현재 학원가에서는 AI 활용 학부모 설명회와 특강이 빠르게 늘고 있다. 참여율은 높다. 하지만 한 달 뒤 행동 변화를 묻는 추적 조사에서 구체적으로 달라진 것을 말할 수 있는 학부모는 소수에 그친다. 욕구가 행동으로 전환되지 않는 데는 구조적 이유가 있다. 자녀와 함께 AI를 사용해볼 시간이 없고, 시도해봐도 내신이나 수능에 직접 연결되는지 불분명하며, 학교와 학원이 서로 다른 기준으로 AI 사용을 판단한다. 배우고 싶다는 욕구만으로는 이 구조적 장벽이 사라지지 않는다.
97%와 85%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 교육에 남기는 과제
두 숫자의 차이는 12%포인트다. 불안하지만 배우고 싶지는 않다고 한 12%가 있다. 이 12%가 어쩌면 가장 솔직한 응답일지도 모른다. '알아도 어차피 바꿀 수 없다'는 체념이거나, '불안하지만 내가 개입할 영역이 아니다'라는 경계 긋기다. 이 체념은 개인의 무기력이 아니다. 학부모가 교육 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구조적 통로가 막혀 있을 때, 배우고 싶다는 욕구조차 생기기 어렵다.
반면 85%가 배우고 싶다고 했다는 것은, 다수의 학부모가 AI를 이미 불가역적 흐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두려워하면서도 외면하지 않겠다는 태도. 이것은 교육 시스템이 응답해야 한다는 신호다. 학부모를 설득하거나 안심시키는 것이 아니라, 판단 기준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신호다. 학교가 AI 사용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 내신 수행평가에서 AI 활용 범위를 학기 초에 명문화하는 것, 학원이 AI 도입 방식을 보호자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 — 이것들은 단순한 행정 조치가 아니다. 정보 비대칭이 줄어들면 불안의 성격이 바뀐다. 막연한 공포에서 구체적 판단의 문제로.
97%라는 숫자는 고정이 아니다. 설문이 측정한 것은 지금 이 시점의 불안이다.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고, 기준이 명확해지고, 학부모가 자녀의 학습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는 구조가 생기면 이 숫자는 달라진다.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불안의 질이 바뀐다. 막연한 두려움에서 구체적 관심으로. 그 전환이 일어나는 지점에서 학부모는 비로소 교육의 참여자가 된다.
오늘 밤 자녀와 나눌 수 있는 질문 하나
자녀가 숙제나 수행평가를 마친 날 저녁, 하나의 질문이 있다. "오늘 AI 썼어?"가 아니라, "오늘 어디서 막혔고, 어떻게 해결했어?"다. 첫 번째 질문은 감시다. 두 번째 질문은 과정을 보는 것이다.
AI를 썼는지 여부보다, 막힌 지점에서 무엇을 했는지가 학습의 실질을 드러낸다. AI에 질문했다면 그 답을 그대로 옮겨 적었는지, 아니면 다시 자기 언어로 바꿔 썼는지. 교과서나 참고자료를 먼저 찾아봤는지, 아니면 바로 AI부터 열었는지. 이 과정의 차이가 쌓이면 자녀의 공부 방식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결과물만 보는 것과 과정을 묻는 것은 완전히 다른 정보를 준다.
이 대화는 자녀를 추궁하는 것이 아니다. 학부모 자신이 AI를 어떻게 쓰는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된다. "나는 오늘 이런 용도로 써봤는데"라는 말 한마디가, AI 활용법 강의 세 시간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 자녀가 부모의 AI 사용을 관찰하는 것, 부모가 자녀의 AI 사용 과정을 함께 들여다보는 것 — 이 두 방향의 대화가 쌓이는 가정에서, 97%의 불안은 조금씩 다른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 도구 독해력은 그렇게, 강좌가 아니라 식탁에서 만들어진다.
97%가 불안하다는 설문은 결국 AI의 위험을 측정한 게 아니다. 교육 시스템이 새로운 도구 앞에서 얼마나 불투명하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드러낸 것이다. 불안과 학습 욕구가 동시에 높다는 것은, 이 문제가 아직 열려 있다는 뜻이다. 닫히지 않은 질문 하나가 남는다 — 불안하지만 배우려 하지 않는 12%의 체념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쪽으로 이동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