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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정책

A가 흔해진 시대, 한국 내신은 무엇을 평가해야 하는가

하버드 학부에서 매년 최고 GPA 졸업생에게 주는 소피아 프로인트 상은 오랫동안 한 명, 많아야 동점자 두 명에게 돌아갔다. 2025년에는 55명이 공동 수상했다. 모두 GPA 만점이었고 거의 만점인 학생도 수백 명이었다. 지난해 하버드 학부 성적의 66%가 그냥 A,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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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흔해진 시대, 한국 내신은 무엇을 평가해야 하는가

하버드 학부에서 매년 최고 GPA 졸업생에게 주는 소피아 프로인트 상은 오랫동안 한 명, 많아야 동점자 두 명에게 돌아갔다. 2025년에는 55명이 공동 수상했다. 모두 GPA 만점이었고 거의 만점인 학생도 수백 명이었다. 지난해 하버드 학부 성적의 66%가 그냥 A, A와 A-를 합치면 84%였다. 하버드 학생 핸드북은 A를 탁월한 수월성(extraordinary distinction)이라 정의한다. 학생 3분의 2에게 붙는 평가가 탁월일 수는 없다. 이 풍경은 한국의 내신·수능·학원 평가 설계를 다시 보게 만든다.

55명 공동 수석이 알려준 것

하버드 채점위원회는 평점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학부 강의 전반에서 그냥 A 비율을 33% 안팎으로 제한하자고 제안했다. 위원회 소속인 조슈아 그린이 디 애틀랜틱에 밝힌 내용이다. 이 제안은 아만다 클레이보 학부교육 학장이 3년에 걸쳐 진행한 조사에 근거한다. 조사는 현재의 채점 체계가 학부의 학문 문화를 훼손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한국에서 이 수치를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한국 고등학교 내신은 2025년 고1부터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바뀌었고 1등급 비율이 4%에서 10%로 확대됐다. 1등급이 더 많아진다는 점에서 구조 자체는 미국 대학과 다르지만 결과는 닮을 수 있다. 상위 등급이 흔해질수록 한 번의 흠집이 더 치명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버드의 데이터는 이 심리를 정량으로 보여준 셈이다.

A가 쉬워질수록 도전이 사라진다

그린은 평점 인플레이션의 진짜 비용이 숫자가 아니라 학생의 선택이라고 적었다. 만점 GPA가 손에 잡힐 듯하면 그 점수를 위협하는 강의를 학생들이 피한다. 그린은 이를 새 차를 받은 학생이 4년간 흠집 한 점 없기를 바라는 상황에 비유했다. 누가 비포장도로로 들어서겠는가.

하버드 동료 스티븐 핑커가 인플레이션을 거부하면 학생들이 해당 학과의 입문 강의를 피해 학과 자체에서 멀어진다고 지적했다고 그린은 전한다. 2025년 하버드 강의실 문화 보고서는 학생들의 강의 선택이 지적 호기심보다 쉬운 A의 가능성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강의 평가가 교수에게 다시 영향을 미치고 그 압력이 또 A를 늘리는 순환이다.

한국 고등학생의 선택지에도 같은 논리가 작동한다. 진로선택과목, 융합선택과목, 심화 영어 독해, 확률과 통계 대신 미적분, 물리학Ⅱ — 어떤 과목을 고를지 결정할 때 내신에 유리한 표본이 우선 기준이 되는 일이 잦다. 학원이 이 과목은 표본이 약하니 피하라고 컨설팅하는 장면도 익숙하다. 학생이 어려운 책을 펼치는 대신 출제 빈도가 높은 지문만 반복하는 이유도 같다. A가 평가의 신호를 잃으면, 학습은 신호를 만들 수 있는 다른 곳 — 동아리, 대외활동, 수상 — 으로 옮겨간다.

B를 받고도 자유로웠던 1학년이 사라졌다

그린은 한 세대 전 명문대 1학년이 겪던 통과의례를 회상한다. 작은 동네에서 전 과목 A를 받던 학생이 대학에서 처음으로 B를, 때로는 그 아래 학점을 받는다. 잠시 흔들리지만 동시에 더 자유로워진다.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에서 풀려나 다른 분야를 시도해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통과의례가 거의 사라졌다.

한국 맥락으로 옮기면 이 이야기는 고1 첫 중간고사, 또는 대학 1학년 1학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정시 비중이 높아지고 학생부 교과·종합 전형이 세분화되면서 한 학기의 부진을 만회할 시간 자체가 줄었다. 고1 첫 시험에서 받은 등급이 3년을 따라온다는 인식이 강해지면, 학생은 도전이 아니라 관리를 학습 전략으로 삼게 된다. EBS 교재를 반복하고 학원에서 풀어본 변형 문제를 다시 푼다. 처음 보는 지문 앞에서 흔들리는 경험 — 학문의 출발선 — 이 일정에서 빠진다.

그린이 기억하는 수업, 점수가 아닌 루티니스

그린은 학부 시절 미술 재능이 없는 채로 건축가 루이스 바카노프스키의 스튜디오 미술 강의를 들었다고 적었다. 양파를 목탄으로 그리는 과제에서 뿌리를 어설프게 그렸다. 바카노프스키는 그림을 가리키며 '나는 이 뿌리들을 믿는다, 루티니스(rootyness)가 있다'고 말하고 등을 두드리고 지나갔다. 그린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강의에서 받은 학점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교수가 자기 뿌리를 믿어줬다는 사실은 기억한다고 썼다. 그리고 만약 자신이 지금의 학생이었다면 — A가 사실상 보장되고 그 아래는 재앙처럼 느껴지는 환경이라면 — 자기 능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그 강의를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일화는 한국 학원과 학교에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하나는 학생이 점수가 기억나지 않아도 남는 수업을 한 학기에 몇 개나 만나고 있는가다. 다른 하나는 그런 수업을 학생이 스스로 고를 수 있게 평가가 설계돼 있는가다. 수능 모의고사 등급, 내신 1등급 표본, 학원 레벨테스트 점수가 학습의 거의 모든 신호를 차지하면, 루티니스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프린스턴이 실패한 이유 — 한국 학원에 주는 경고

그린은 위원회가 자율 가이드라인, A+ 추가, 문자 대신 숫자 사용 같은 대안을 검토했고 결국 상위 학점 비율 제한으로 결론을 모았다고 적었다. 다만 프린스턴이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시행한 A 등급 비율 상한제가 유명한 실패로 끝났다는 점을 함께 적었다. 사후 분석에 따르면, 시행을 학과별 자율에 맡긴 것이 문제였다. 학생에게 자기 성취에 대한 명확한 신호를 주지도, 학과 간 일관된 채점을 만들어주지도 못했다는 진단이다.

이 실패는 한국 학원이 자체 평가 체계를 만들 때 곧바로 적용되는 교훈이다. 도전 과제 수행을 평가에 반영하겠다는 선언만으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는다. 어떤 학년의 어떤 강의에서, 어떤 비율로, 어떤 기준으로 도전 점수가 들어가는지 — 그 기준이 학원 전체에서 일관되게 적용되는지 — 가 핵심이다. 강사 한 명이 이 학생은 어려운 지문에 도전했으니 가산점을 주고 옆 강의실은 그렇지 않다면, 학생이 받는 신호는 다시 흐려진다.

점수 대신 도전한 과제를 측정하는 평가 설계

하버드 사례에서 한국 학원이 가져올 수 있는 실질적 함의는 평가 항목의 다층화다. 결과 점수만으로 학생을 분류하면 학생은 결과 점수가 잘 나오는 입력만 골라 한다. 학원이 평가 지표에 도전 과제 수행, 오답 개선, 처음 보는 지문에서의 회복 속도를 함께 넣으면, 학습의 입력이 달라진다. 어려운 비문학 지문에 도전했다가 절반만 맞춘 학생과, 익숙한 지문에서 90%를 맞춘 학생을 같은 좌표에 놓을 필요가 없다.

구체 적용 방향은 세 가지다. 먼저 매 단원 평가에 난이도 선택 트랙을 둔다. 학생이 자신의 도전 수준을 고르고 점수와 별개로 선택한 난이도를 기록에 남긴다. 다음으로 오답 개선율을 별도 지표로 추적한다. 같은 유형 오답을 다음 회차에 어떻게 줄였는지가 결과 점수만큼 중요한 학습 지표가 된다. 끝으로 학기말 면담에서 이번 학기에 본인이 가장 도전적이라 느낀 과제를 학생이 직접 지목하게 한다. 이 답이 비어 있는 학생은, 점수가 높아도 학습 측면에서는 정체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완벽한 성적표가 가리는 것

그린이 인용한 한 로스쿨 학장의 말은 이 사안의 본질을 압축한다. '하버드 성적이 쓸모없다고 말하면 경박하지만 거의 쓸모없는 게 사실이다.' 미국 대학 전반에서 가장 흔한 학점이 A라는 연구 결과도 그린은 함께 적었다. 한국 내신은 이와 다른 분포를 그리지만 학생이 받는 압력의 모양은 비슷하다. 한 번의 흠집을 두려워해 비포장도로를 피하는 심리는 평가 체계의 부산물이다.

완벽한 성적표는 학생이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피했는지를 더 정확히 보여주는 문서가 되곤 한다. 학원과 학교가 학생에게 돌려줘야 할 것은 점수 손실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자리다. 이 자리가 평가 항목 한 줄로 시작되든 면담 한 문장으로 시작되든, 첫 걸음의 방향은 같다. 결과를 측정하는 도구를 학습 과정을 측정하는 도구로 다시 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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